융합(融合, fusion)과 유착(癒着, adhesion)
- 희망의 푸른 물결(8)
융합에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 핵이 분열할 때보다 핵이 융합할 때 나오는 에너지의 양은 200 배가 넘는다. 기업도 M & A를 통해 결합할 때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를 가져온다.
융합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뜻의 단어가 있다. 바로 유착이라는 단어다. 결합되어서는 안 되는 조직끼리 한 통속이 되는 것을 유착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착은 융합과 달리 부패와 패망을 가져온다. 운명적으로 서로 분리 독립하여 각자 기능을 수행해야 할 조직이 왜 유착될까. 이익에 눈이 멀어 본질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몇 가지 현상들을 보자.
국무총리 골프 파동은 정경유착의 표본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정치권력과 경제조직이 어떻게 내통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경유착을 가장 혐오한다는 정권이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하는지 국민들이 주시할 것이다.
최연희 의원 사건으로 나라가 온통 소란하다. 물론 그는 그의 행동에 걸 맞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의 배경에 더 관심이 많다. 한나라당의 지도부와 모 신문사 편집국 팀이 함께 어울려 술판을 벌린 것이다.
두 조직은 어떤 관계인가. 한 쪽은 취재대상이고 다른 한 쪽은 취재하는 주체이다. 다시 말하면 한나라당은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하는 정치조직이고, 신문사 편집국은 비판과 감시를 해야 하는 언론이다. 그런데 그 두 조직이 폭탄주를 마시며 흉허물 없이 지내면 어떻게 될까.
또 난데없이 서울시장의 황제 테니스 스캔들로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무슨 엄청난 비리라도 있는지 모르나, 나는 이 문제 보다 다른 문제를 짚어보려 한다. 서울시장이 자기 세비 모두를 모 재단(財團)에 전부 기부하고 있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워낙 요란하게 선전을 했으니까.
시장이 재력가라 세비 모두를 공익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에 속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 적지 않은 세비 모두를 매달 전부 한 단체에 기부한다는 것도 기이하고, 특히 그 단체가 한국 시민운동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 명망가들이 설립한 단체라는 점에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가 그 많은 세비를 매달 10만원씩 나누어 5~60 여개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다면 그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 불우한 계층을 돕기 위한 단체가 얼마나 많은가. 그 단체들마다 매달 10만원씩 기부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데 그는 하필 정치, 경제, 언론 권력을 매섭게 비판하는 시민사회 최고의 지도자들이 설립한 단체에 세비 모두를 기부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시민단체로부터 부단히 감시, 비판을 감수해야 할 위치에 있는 시장으로서 비판권력과의 유착을 기도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든다.
여당 측에서는 어떤 일이 터져도 침묵하는 시민단체들이 야당 측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야단법석을 피우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 이번 그의 일에 관하여 시민단체들이 일어섰다는 보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분명 여당이 아닌 야당 측 사람인데 말이다. 아무튼 비판권력과의 유착이 그의 도덕적 긴장을 해이하게 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며칠 전 여야 원내 대표들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어울려 만찬 회동을 하였다. 나는 이런 회동이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대통령과 국회는 헌법상 대등한 위상을 가진 기관이다. 행정과 입법은 분리 독립하여 서로 감시 균형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도 두 권력은 서로 친하거나 밀착될 수 없다. 그것이 대통령제 하의 대통령과 의회의 운명이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에도 여야 원내총무들이 대통령과 어울려 백악관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역대 대통령들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한꺼번에 청와대로 불러 밥을 먹었던 일이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대통령이 정당 대표나 원내대표 개인을 불러 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일은 물론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여야 원내대표를 통째로 부르면 그들은 의회의 상징이 되고 그 회동은 대통령의 권력과 의회 권력의 유착을 부르게 된다. 이는 두 권력이 항상 거리를 유지하고 견제 균형을 통해 국민의 행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헌법의 원리와 충돌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의회 지도자들을 모두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즐기는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 초청을 받더라도 야당 대표들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해야 할 것이다. 어찌하여 이 정권 들어 이런 비정상적인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융합은 두 조직이 결합하여 더 생명력 있는 조직으로 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제1의 기업 마이크로 소프트는 100 개 이상의 기업이 이런 창조적 융합과정을 거쳐 탄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착은 두 조직이 결합하여 서로 생명력을 죽이고 부패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결합해서는 안 되는 조직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서로 비판 감시해야 할 권력 사이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일은 그래서 절대로 지켜야 될 원칙이다.
골프로, 폭탄주로, 기부로, 밥 먹는 일로 거리를 좁히려 하지 말라 그러다 유착을 부르고 오늘 우리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2006.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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