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집안 계 민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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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6-04-05 05: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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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집안 계를 하나 갖고 있다. 그 모임 중에 연세가 가장 많다. 그 계의 연륜도 그런 만큼 참여자 모두가 매우 늙어 오늘이 그 계를 깨기위한 마지막 계모임이라고 한다.

비가 많이 왔다. 그 동안 타는 듯 가물던 산하에 비가 오니 고마운 일이라고 하면서도 모친은 내일 모임에 갈 것을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한다.

아침 이른 시간에 시내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택시를 부르는 방법이 있겠지만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타쓰는 일이라 경비도 문제가 되거니와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닌데 비상수단을 쓰야할 것인가에 우선 갈등이 된다.

날씨 변동에 따라 참석여부가 정할 것이기 때문에 좀 더 느긋한 결정을 하시라고 모친 계신 시골집에 묵기로 했다.

고만 고만 칠순과 팔순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서로 언니, 형님, 아지매, 형수 라고 부르는 집안의 계모임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30년 넘게 해마다 한 번 만날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없는 모임에서 집안에 일어난 숨은 얘기들, 그리고 지난 얘기들을 서로 들으면서 자식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자랑하는 것에 함께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자랑이 되어주지 못하는 자기 자식들을 가슴속으로 감추는 작업들은 없었을까?

지난 해 나는 그 모임에 참석해 거하게 한 번 쏘았다. 단지 내 어머니의 기를 살려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언니가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참 별것 가지고 기가 산다 싶긴 하지만 그 효과는 매우 대단했다!!

손바닥만한 동네도 이제 젊은이들은 볼 수도 없다. 사람 수보다 오히려 도둑고양이의 수가 더 많은 동네가 되어버린 동네...

코를 골면 깨워달라는 내어머니의 부탁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영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이상한 소리와 시계바늘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도저히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 이리 저리 채널을 돌려가면서 결국 새벽 5시 반을 넘기고 말았다. 아침이 되고서야 온 밤 내내 내가 들은 이상한 소리는 발정난 고양이들의 짝을 찾는 소리, 억머구리들의 울음소리였다는 알았다.

나는 지난 해 내 어머니와 거의 싸우다시피 해서 매달에 한 번씩은 해야하는 머리염색을 그만두게 했다. 엄마가 머리 염색을 하면 젊은(?) 내가 염색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관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한 6개월이 지나면서 염색된 머리칼이 잘려나가고 온 머리가 자연스럽게 반짝이는 은백을 지니게 되자 사람들이 깨끗해보인다는 말에 내 어머니는 매우 만족을 하는 듯했다. 내 평생 내 어머니께 가장 잘 한 일이 아닐까 싶다! 길을 가면서 스친 사람들도 어머니께 한마디씩 한단다. 백발과 더불어 고와보인다고...

화장을 하는 모친의 모습을 바라본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불평을 하면서도 어머니의 늙은 손길은 매우 익숙하게 움직인다. 화장을 잘 하지 않는 나를 핀잔하신다. 젊었을 때 무엇이든 하라고 충고를 한다. 늙어지면 못할 것이 많다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다 하라는 것이다. 분명 내 어머니에게는 그 이전 여자로서 어미로서 친구로서 하고 싶은 것들을 유보해야 했을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부모님께 그리고 친구들을 핑계로 정작 자기자신에게 중요한 꼭 해야 할 일을 다른 어떤 일을 하느라 유보하고 있지나 않은지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최우선의 일인지 한 번 점검을 해봐야 하리라. 현재 우리가 유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정작 우리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내일이 언제까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정 중요한 일을 마무리 짓지는 않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 내일이 내 사정을 봐서 더 계속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또한 아닐까?

나는 냉장고에 먹을 음식을 가득 쌓아놓고 죽는 것이 매우 부끄러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거의 매일 조금씩 장을 봐다가 온 가족이 먹고 동내게 만든다. 그래서 예정되지 않는 손님을 맞을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내 어머니의 냉장고는 먹을 것으로 가득 차있다. 당신이 아니라도 누가 먹어도 먹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언제든 엄마는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어머니를 관광버스까지 모시다 드리고 잘 노시라 인사하고 오는 길에 눈가에 열기가 몰린다. 이렇게 살다 가는 것이라. 나를 찾아올 주인인 나보다 더 힘있는 손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비설겆이를 하듯 내가 미리해놓아야 할 설겆이를 내내 생각했다. 그래도 내 냉장고는 비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웃음을 날린다. 장윤정이 부른 꽃을 들으며...

집안 계를 마지막으로 깨뜨리며 그들은 어떤 얘기들로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질까? 서로 건강하시라... 그리고 집안 대소간이 있을 때 자주 만나자는 공허한 인사들로 허전한 가슴들을 메꾸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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