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기사는 이명호님의 <<a href=http://blog.ohmynews.com/hotzone/ target=_blank>레인메이커의 HOT ZONE</a>> 블로그에 실린 글로, 이명호 님의 허락을 받아 <민주통신>에 전재합니다. 이명호님께 감사드립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니 때문에 고생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똑바로 올라온 사랑니라면 충치 하나 뽑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옆으로 비스듬히 누웠거나 다 자라지 않고 잇몸에 반쯤 걸쳐있는 거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잘못 뽑으면 혀가 마비되거나 턱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성 멘트를 날린 뒤 치료를 시작한다.
일부 개인 병원의 경우, 환자의 상태가 심할 땐 아예 치료 자체를 포기하고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이들을 실력 없는 의사로 매도하기 쉽지만, 치료의 위험에 대해 솔직히 말해주는 의사야말로 훌륭한 의사다. 사랑니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무리하게 뽑을 경우 그 아래를 지나는 신경에 손상이 가 실제로 턱이나 혀가 마비되기도 한다. 자신만만해 하는 의사에게 치료를 맡겼다가 이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자들은 마땅히 하소연 할만한 데가 없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흔하게 생기며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사랑니 뽑다가도 의료사고 발생할 수 있어
윤아무개씨는 지난해 10월 경 우측 어금니가 흔들려 동네치과를 찾았다. 의사는 엑스레이 촬영 후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 것이 좋지만 바로 옆에 사랑니가 바싹 붙어있어 여기서는 어렵겠다’고 말했다. 윤씨가 의사에게 어금니 조금 흔들리는 정도를 못 고치면 되겠냐며 단순 치료를 요구하자, 의사는 자신이 없다며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윤씨는 거기서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갖고 A치과를 찾았다. 그는 그곳의 젊은 의사에게 먼저 번과 같은 부탁을 했다. 의사는 어금니가 흔들리는 원인이 잇몸에 박힌 사랑니 때문이라며 윤씨에게 발치를 권했다. 별것 아니라는 말에 안심한 그는 의사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의사는 잇몸을 절개하는 수술 방법을 택했다.

▲ 의료사고가족연합회 홈페이지 공개상담실에 윤씨의 하소연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고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마취가 안 풀린 것처럼 혀에 감각이 없었다. 원래 그런가보다 생각했던 윤씨는 3일이 지나도록 혀의 마비가 풀리지 않자 또 다른 치과를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발치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며 좀 기다려보라는 대답을 줬다.
윤씨는 한 달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차도가 없자, A치과로 찾아가 치료를 잘못 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치료를 담당했던 젊은 의사 대신 원장이 나와 윤씨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잇몸과 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보단 악성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암이 아니라면 6개월 후엔 혀도 잇몸도 원상회복 된다고 윤씨를 위로하며, 혹시 모르니 종합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암이라는 소리에 넋이 나간 상태에서 자신의 증상이 과거 설암으로 죽은 고모부의 증상과 흡사하다고 판단한 윤씨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완전한 체념으로 조직검사를 해볼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그는 3개월이 넘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정신적 고통 속에서 신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와 혀가 불편할 뿐, 죽을 사람답지 않게 오히려 몸이 혈기왕성해지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윤씨는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암은 무슨 암이냐, 조직 검사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자, 놀란 윤씨는 죽어도 조직검사를 해야겠다고 우겼다. 검사 결과 윤씨의 증상은 암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의료원의 의사는 사랑니를 뽑을 때 그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혀를 너무 잡아당겼거나 무리를 했기 때문에 신경이 손상되어 나타난 현상이라며, 치료시기를 놓쳐 쉽지만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의료사고 피해자 단체중 하나인 '의료사고가족연합회'의 공개 상담실에 올라와 있는 내용이다. 이처럼 의료사고는 이름도 외우기 힘든 큰 병에 걸렸을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니를 뽑다가도, 감기를 치료하다가도 발생할 수 있다.
의료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서민
이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정 의료사고의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의사와 환자 간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사고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명확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원이나 의료심사조정위원회의 조정절차가 있긴 하지만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대부분은 소송을 걸어 재판절차를 밟지만 이 경우 판결까지 걸리는 기간이 일반적인 소송에서보다 훨씬 길어 피해자들의 고통이 배가된다.
소송까지 갔을 때 더 큰 문제는 의료 분야 자체가 가지는 고도의 특수성과 전문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의료인과 피해자 간 정보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료인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피해자는 당연히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의료소송에서의 환자 승소율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리 낮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최근 의료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들이 다수 등장해 정보 불균형이 일부 해소됐고, 법원에서도 원고 입증 책임을 완화하여 폭넓은 증거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 의료전문 로펌을 등에 업을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의료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는 높은 수임료를 감당키 어려운 힘없는 서민일 가능성이 높다.
안양에 사는 주부 최 아무개(37.여) 씨는 지난해 9월 감기가 심해 가까운 대학병원에 입원했다가 5일 만에 사망했다. 병원 측은 C-T 촬영을 비롯한 각종 검사에도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자 조직 검사를 권유했다. 최씨는 4cm를 절개하는 어렵지 않은 수술이라는 병원측의 말에 동의, 4시간에 걸쳐 폐와 임파선의 조직 적출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사체 확인결과 병원 측 이야기와는 달리 가슴부위에 13cm의 절개 자국이 있었고 900cc에 달하는 내부 출혈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유가족들은 온라인에서도 투쟁을 전개했다.
최씨가 사망한지 5일이 지나도록 병원측은 유가족들에게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히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항의하자 수술 집도 의사는 그녀의 사망 원인이 다른 장기에서 전이된 말기암 때문이라며, 과다 출혈은 말기암으로 인한 것이라고 답했다. 최씨의 언니는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수많은 검사를 했는데도 암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의료 과실이라 주장한다. 또한 치료를 위한 수술도 아닌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이 장장 4 시간이나 걸렸던 것과, 4cm만 절개한다던 수술부위가 13cm에 이르는 것 등 의혹 투성이라며 병원 측이 유가족들에게 ‘숨기는 게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 해결하려 해도 관련법 없어
유가족들의 계속된 항의에 병원측은 ‘과실은 없지만 도의적인 차원에서 보상하겠다. 얼마를 원하느냐’며 합의가 싫으면 법대로 하자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런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던 그들은 도청과 보건복지부 등 정부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소송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 뿐.
유가족들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더욱 깊은 좌절감뿐이었다. 피해구제를 위한 관련법이 없었던 것. 그들은 민사 소송을 진행함과 동시에, 관련 제도 마련과 의료사고를 판정할 중립적 전문기구 설치를 요구하며 국회 앞 1인 시위와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최씨의 죽음으로 인한 피해 뿐 아니라 막대한 2차 피해를 입었다. 최씨의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잃었고, 최씨의 어머니는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 되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두 자녀도 졸지에 엄마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면서, 일단 한번 발생하면 극심한 피해를 만들어 내는 의료사고. 이를 예방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지만 일명 '의료사고 피해구제법' 이라 불리는 이 법은 17년간 제정되지 못한채 국회에서 표류해왔다.
2편에서는 관련법 제정 시도가 그동안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