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기사는 이명호님의 <<a href=http://blog.ohmynews.com/hotzone/ target=_blank>레인메이커의 HOT ZONE</a>> 블로그에 실린 글로, 이명호 님의 허락을 받아 <민주통신>에 전재합니다. 이명호님께 감사드립니다.
1편에서의 사례와 같이 의료사고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할 적당한 수단이 없는 것이 사실. 의료사고 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명시한 이른바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은 91년 의료계가 ‘의료피해보상구제법안’을 입법 청원한 이래 현재까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정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는 관련 당사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법제정 시도, 번번이 임기만료로 폐기
의료사고피해구제법에 대한 입법 시도는 14대 국회 때를 시작으로 수차례 있어왔다. 80년대 말부터 의사협회는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인에 대한 형사책임의 면제를 골자로 한 ‘의료사고처리에 대한 특례법’ 제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1991년 병원협회와 의사협회의 ‘의료피해보상구제법안'입법청원이 제출되자, 이를 기점으로 법 제정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14대 국회에 이르러 94년 정부로부터 조정전치주의, 형사처벌특례, 의료배상공제조합 설립 및 가입의무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의료분쟁조정법안'이 제출되었지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의료계가 추가적으로 ‘무과실보상제도' 도입을 주장함으로써 정부와 견해차를 보여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폐기 되고 말았다.
15대 국회에 들어서도 정부는 97년, 98년 두 차례에 걸쳐 입법을 추진했지만, 이번에는 정부 부처간 이견으로 정부안 도출에 실패했다. 97년에는 조정전치주의와 형사처벌특례가 현행 법 체계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법무부의 반대로, 98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 행정자치부 등의 반대로 국회에 법안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
법무부는 97년과 같은 이유를 들어 98년의 정부안에 반대하였다. 공정위는 의료배상공제조합 설립 및 가입의무화가 의료보상 보험시장에서의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점을, 행자부는 의료분쟁조정위원회 및 지방의료분쟁조정위원회 사무조직 설치에 많은 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을 반대의 이유로 각각 내세웠다.
정부안과는 별도로 의원입법이 시도되기도 했다. 97년 7월 새정치국민회의 김병태 의원은 형사처벌특례조항, 무과실보상제도, 필요적 조정전치주의, 조정위원회 설치‧구성과 조정부의 설치, 의료배상공제조합 설치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의료분쟁조정법안'을 발의하여 국회에 제출했다. 11월에는 신한국당 정의화 의원이 김병태 의원안에서 무과실보상제도를 제외한 내용의 법률안을 제출했다.
보건복지위는 이 두 법률안을 취합, 99년 11월 ‘의료분쟁조정법안'에 대한 대안을 내놨다. 이 안은 의원입법안의 내용을 대부분 포함했지만, 무과실보상 및 조정전치주의 규정을 삭제하고 의료분쟁조정위원회는 특수법인으로 설치한다는 것 등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대안 심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보건복지위로 돌아갔다. 이해 당사자인 의료계와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법사위, 법무부, 복지부 간 형사처벌특례조항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15대 국회의 임기만료와 함께 법안이 폐기됐다.

▲ 이기우 의원의 법률안은 지난해 12월 발의된 후, 지금까지 상임위에 계류되어 있다.
이후에도 법률 제정을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02년 10월 한나라당 이원형 의원은 무과실보상제도, 임의적 조정전치주의, 책임공제가입 의무화, 형사처벌특례조항 등의 내용을 담은 법률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 역시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표류하다 16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17대 국회에 이르러 열린우리당 이기우 의원은 이원형 의원의 안을 바탕으로 한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를 위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발의된 후 4개월 이상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다가, 지난 4월 21일에야 비로소 상정되어 복지위의 심의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국회 조율능력 부족으로 제 역할 못해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자와 의료진과의 분쟁에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이 하루빨리 제정되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까지 국회는 관련 당사자간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번번이 임기를 넘겨 법안이 폐기되는 결과만을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자, 의료계, 정부, 정치권 등 모든 이해 당사자가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그 세부조항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은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제도가 시행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을 뚫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료 사고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자와 의료계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 부처간에도 법리 해석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법이라도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는 것은 없다. 문제가 복잡하다고 덮어두기만 한다면 그것을 과연 국회라 부를 수 있을까. 타협과 협상을 통해 솔루션을 만들어 내는 곳이 국회라면, 그리고 그 솔루션이 '입법'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우리의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낙제점이다.
이어지는 3편에서는 당사자간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에 대해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파악해 보도록 하자.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