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민운동의 문제점과 발전방향
- 시민운동의 새물결과 그 방향

▲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
1. 머리말
토론회 주최측에서 발제의 제목을 ‘시민운동의 새물결과 그 방향’으로 정해 주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한국시민운동이 상당한 사회적 역할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전면적으로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민운동이 해온 일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겠는지를 모색해보자는 것이 이 토론회의 취지일 것이다.
시민운동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요즘 시민운동이 국민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보다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는 데 기초할 것이다. 모든 시민운동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요 시민운동단체들의 경우 정략적 편가르기에 편승하여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면서 정파적 이익을 챙기려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시민운동이 과도하게 정치화되면서 특별히 집권세력과 유착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시민운동이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여 새로운 역사의식과 가치관에 기초하여 사회현상을 새롭게 이해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이념의 포로가 되어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도 시민운동이 사회발전을 가로막으면서 국민으로부터 불신받게 된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이처럼 집권세력과의 유착으로 인한 관변단체화와 구시대적인 이념의 포로로 인한 시대착오성은 결국 시민운동을 위기로 몰아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 발제에서는 시민운동의 여러 문제점 가운데 권력(집권세력)과의 유착 문제와 이념적 편향 문제를 중심으로 왜 이런 현상이 생겼고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해서 시민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열수 있겠는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2. 시민운동의 권력과의 유착 -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 방기
시민운동은 본질적으로 권력을 감시 · 견제하는 데 그 존재의의가 있다. 이때의 권력은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종교권력 등 개인적 노력이나 제도적 방법으로는 그 부당성을 바로잡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말하나 이 발제에서는 정치권력, 그 가운데서도 집권세력을 중심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시민운동은 근본적으로 권력 곧 집권세력을 감시 · 견제하는 데 그 존재의의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혹 집권세력이 좋은 정책, 특히 개혁정책을 편다면 시민운동은 당연히 이에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협조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집권세력의 지지세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개혁적인 정부 곧 좋은 권력일 경우에는 그 지지세력이 되는 것이 옳고 반개혁적인 정부 곧 나쁜 권력일 경우에만 감시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시민운동의 존재의의를 망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시민운동은 좋은 권력에 대해서든 나쁜 권력에 대해서든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 대부분의 시민운동단체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지지세력이 되어 왔는데, 이것은 시민운동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난 것인 동시에 시민운동을 위기로 몰아넣은 주된 요인이다. 그리고 시민운동의 이러한 편파성은 정치적 편가르기를 심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정치적 편가르기는 지역주의와 1인 지배체제에 따른 사생결단식 권력투쟁과 줄서기에 크게 기인하지만 시민운동이 이를 고착시키다시피 했다. 정치세력이야 당연히 편을 갈라 싸우리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불편부당한 중립적 위치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시민운동이 어느 한편에 서서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게 되니 극단적인 편가르기가 형성되지 않을 수 없다. 친DJ세력과 반DJ세력, 친노세력과 반노세력의 극단적인 대립은 물론 친북세력과 반북세력의 극단적인 대립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편가르기의 중요한 책임이 정치권보다 시민운동권에 더 많이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왜 불편부당해야 할 시민운동이 김대중 · 노무현 정부의 지지세력이 되었을까?
이렇게 된 것은 두 정부가 민주세력의 집권인 데다 두 정부가 강구한 정책들이 개혁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밖에도 정부로부터의 활동자금 수수, 정부기관 발주의 프로젝트 인수를 통한 자금조달, 시민운동가의 정치권 내지 공공기관 진출, 관선이사나 사외이사 등의 취임, 정부요로를 통한 이권 개입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으나 그 명분은 ‘민주정부’와 ‘개혁’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를 지지해주는 것이 개혁을 돕는 것이라고 간주했겠으나 사실은 사적인 동기로 개인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친정부적이 된 경우가 대단히 많음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나라당과 기득권세력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저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만큼 시민운동세력이 정부의 개혁정책을 지지해 주어야 개혁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설사 그런 측면이 있더라도 그것이 권력과의 유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런데 김대중 · 노무현 두 정부가 내세운 대부분의 개혁정책들이 개혁적이지 못했는데도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이것을 지지한 것도 문제거니와 설사 두 정부가 내세운 개혁정책들이 개혁적이라 하더라도 개별정책을 지지하는 데 그쳐야지 두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서는 시민운동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개혁정책들, 예컨대 기업구조조정, 금융개혁, 재벌개혁, 부실기업 퇴출, 공기업 민영화 등은 나라경제를 외국자본에 팔아넘기는 정책이었는데도 시민운동단체들은 이를 방조할 뿐이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도 결코 옳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이를 지지하는 것이 개혁이라고 생각하고서 적극 지지해 왔던 것이다. 모두가 시민운동 본연의 임무인 집권세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온 주요정책인 부동산정책, 수도이전 정책, 기업도시 정책 등이 개혁적이거나 타당한 정책이 되지 못했는데도 이들 정책을 지지하거나 방조해 왔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내건 개혁정책이 개혁적이지 못했음은 결과가 증명해주고 있다. 만약 개혁적이었다면 우리사회가 이토록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국민의 삶이 이처럼 피폐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혹 두 정부의 정책은 개혁적이었는데 한나라당과 기득권세력이 개혁을 저지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으나 집권세력이 야당이나 기득권세력이 반대해서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온갖 실정으로 국민의 신임을 잃었는데, 이에 대해 시민운동도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잘못된 개혁을 시민운동이 끊임없이 정당화해 왔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정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시민운동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주요정책, 예컨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 낙선운동, 그리고 주요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가 주도해온 소액주주운동(주주이익 극대화운동) 등은 권력과 무관하고 또 개혁적인가?
시민운동단체 대부분이 참여했던 낙천 · 낙선운동은 한국시민운동이 가장 큰 성과를 이룬 운동으로 간주되었고 또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정치개혁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음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 낙선운동은 지역주의정치와 부패정치의 청산을 목표로 했지만 김대중, 김종필, 이회창 등 지역당구도와 부패정치의 장본인들을 그대로 둔 채 몇몇 지역감정 조장 정치인과 부패정치인을 낙천 · 낙선시킨다고 해서 지역주의 정치와 부패정치가 청산될 수는 없었다. 결국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 낙선운동은 지역주의 정치와 부패정치의 장본인인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 김종필 총재 등에게 그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을 제거할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지역당구도와 정치부패가 계속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 낙선운동은 지역당구도를 타파하거나 정치부패를 청산하는데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정파간의 대립을 격화시키면서 시민운동이 정권의 ‘홍위병’이라는 비난을 듣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비록 정략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비난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대중적으로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함으로써 시민운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 ‘바꿔 열풍’ 속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면서도 그 후 한국정치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데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 낙선운동은 실패한 것이 아닐 수 없으며, 이처럼 실패한 것은 당시 국정의 최고책임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방기한 채 오히려 김대중 대통령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이 운동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전제하지 않은 시민운동은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여연대가 주도한 ‘소액주주운동’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서 출발하기보다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정책’에 편승한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을 뿐이다. 참여연대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액주주운동’을 전개했다면 그것은 시민운동이 할 일이 아니었고, 그렇지 않고 재벌개혁 곧 재벌해체와 재벌오너 압박을 위해 전개했다면 그것은 외국자본을 위한 김대중 정부의 재벌압박정책에 편승한 것일 뿐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국자본(주로 미국자본)의 요구에 따라 재벌을 해체하거나 재벌오너를 압박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는데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세계화시대(글로벌 경제)의 도래와 더불어 재벌의 사회경제적 의미가 크게 달라졌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사독재정권시절이나 일국경제시대에는 재벌이 정경유착, 탈세, 부동산 투기, 독과점 가격을 통한 폭리 등으로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환경 전반에 걸쳐 엄청난 해악을 끼쳤으나 정치의 민주화와 더불어 세계화시대가 도래하면서 재벌이 그러한 횡포를 부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상호출자, 상호지급 보증, 내부자 거래 등에 관한 규제만 하면 되고, 그 밖의 문제는 사회적 감시와 더불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때문에 재벌기업 스스로 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관련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한 재벌체제를 유지하더라도 상관없게 되었고, 심지어 세계적인 대기업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한국으로서는 재벌해체를 강제할 일이 아니었다.
바로 이런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데도 재벌을 적대시해서 재벌해체나 재벌오너의 퇴진을 겨냥해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반국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여연대가 김대중 정부의 사이비 경제개혁정책을 비판하면서 소액주주운동을 벌였다면 소액주주운동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IMF 사태를 빙자하여 IMF의 요구사항인 기업구조조정, 금융개혁, 재벌해체, 노동시장의 유연성, 시장개방 등 한국경제를 외국자본에 팔아넘기기 위한 정책을 ‘경제개혁’이란 이름으로 전개하는 데도 이를 비판하거나 반대함이 없이 이에 동조하는 차원에서 소액주주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소액주주운동은 권력과의 유착으로 시민운동의 본분에서 벗어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부정부패사건에 대해 시민운동이 너무 많이 침묵한 것도 시민운동이 권력의 ‘홍위병’으로 인식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한나라당이나 재벌 등이 비난받을 부정부패사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침묵하게 되니 국민들이 시민운동을 권력과 유착된 것으로 보게 된다.
시민운동이 이처럼 권력과의 유착으로 관변단체화했다는 비난을 듣는 것은 시민운동의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권력과 결탁해서 너무 많은 이권을 챙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벌기업의 사외이사, 학교법인의 관선이사, 대학의 이사장과 총장, 공기업의 사장과 감사 등 무수한 자리를 차지했다. 혹 사회 각 부문의 개혁과 감시를 위해 시민운동가들이 직접 그런 자리를 차지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논리대로 하면 사회 각 부문이 시민운동가들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민주’와 ‘개혁’을 명분으로 권력과 결탁하고, 그 대가로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돈을 지원받으면서 온갖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민주와 개혁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정권의 홍위병이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 이것은 시민운동을 망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기 위해, 그리고 정부기관 발주의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온갖 로비를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시민운동이 전개될 리가 없다. 이런 일로 민주화운동을 너무 많이 훼손해 왔음을 생각할 때 시민운동은 역사에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혹 외국에서도 시민단체가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거니와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른 지원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시민운동의 본질을 망각한 주장일 뿐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시민운동을 할 자격이 없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정부를 가차없이 비판한다면 달리 이해될 수도 있겠으나 아직 그런 예를 본 일이 없다. 이라크파병 반대와 FTA반대를 그 예로 들지 모르겠으나 그것으로 권력과의 유착이 부인될 수는 없다.
시민운동의 새물결이 일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시민운동의 이념적 편향
우리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문제는 이념적 편향에서 오는 갈등이라고 말해서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동유럽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더불어 동서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이념문제는 정리되는 듯싶었는데 오히려 우리사회는 이념적 대립이 더 첨예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회갈등과 정치공방이 이념문제에 기초하고 있을 정도이니 분단으로 인한 이념대립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념대립이 무슨 내용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회주의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칭 진보세력의 시대착오적 사회주의 집착과 북한 추종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이를 논박하는 자칭 보수세력의 시대착오적 색깔론과 북한규탄도 잘못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시대변화에 따라 보수와 진보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난 시대의 보수와 진보로 서로 상대방을 공박하고 있으니 생산적일 리가 없다. 제대로 된 ‘레프트(좌익)’가 없는 터에 ‘뉴라이트’를 자처하면서 이념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보수와 진보, 우익과 좌익, 라이트와 레프트 등, 내용은 제대로 없이 편만 가르는 개념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내용이 있는 이념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민중운동진영과 보수세력은 지난날의 관성을 버리지 못해 그렇다 치더라도 공공선을 위해 체제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기본성격으로 해야 할 시민운동이 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하거나 또는 이에 반대하기 위한 신보수주의 이념에 기초해서 상대방 비난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니 시민운동이 왜곡되게 된다. 양쪽 다 나름대로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우리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민운동의 어떤 부문이 시대착오적 이념편향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우선 민족통일을 명분으로 한 친북적인 통일운동이 다분히 사회주의 내지 북한정권에 대한 편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6.15공동선언실천운동, 민족통일대축전 등이 문제인데,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대화 · 교류 · 협력이라면 나쁠 것이 전혀 없으나 그것이 한편으로는 북한의 잘못된 주장을 옹호하여 남한 내부의 갈등을 격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인민을 억압하는 북한정권을 돕고 있어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남북사이의 대화와 교류 및 평화와 통일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있을 수 있지만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도 방해가 되지만 북한인민을 아사지경으로 내모는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북한정권을 유지시키기는 차원의 노력들은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나라의 정권과 지도자에 대한 비판 한마디 없이 오직 대화와 교류만을 주장하고 있으니 ‘친북’이란 비난을 듣게 된다.
결국 상식 밖의 북한 추종을 일삼는 세력이 시민운동의 주류를 이루니 이를 반대하는 시민운동 또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8?15 광복절에 광화문 일대에서 전개되는 ‘친북’과 ‘반북’의 격렬한 대립은 맹목적 친북통일운동의 필연적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남북통일 한다면서 남쪽마저 분열시키는 민족분열 행동을 하고 있음을 자칭 통일운동세력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의 시민운동은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로 이미 사회주의는 인간해방 · 노동해방의 이념이 될 수 없음은 물론 경제침체를 가져와 인민을 아사지경으로 내모는 것임이 판명되었는데도 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자칭 진보세력 내지 대다수 시민운동세력이니 시민운동이 시대적 과제에 충실할 리가 없다.
시민운동의 이런 경향은 재벌 내지 기업에 대한 공격, 시장경제에 대한 거부,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일방적 지지로 나타나는데, 이래서는 시민운동이 시대적 과제에 충실할 수가 없다.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을 불러일으키면서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뿐이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사유재산의 폐지), 계획경제(시장경제 배격), 노동자 계급의 독재(자유민주주의 반대) 등을 기본으로 하면서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간주하는데, 이런 것으로는 인간해방 · 노동해방을 달성할 수 없음은 물론 사회가 퇴보할 수밖에 없다. 평등의 경우, 그것을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하던 시대는 지났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자아실현(자유)이 평등보다 더 중요하다. 많은 경우 평등은 인간해방에 가장 중요한 자아실현을 가로막게 된다. 생산력의 발전으로 누구나 해방된 삶의 실현에 필요한 경제적 풍요를 달성할 수 있게 된 정보사회에서는 평등을 보장하기보다 자아실현을 보장해야 한다. 자아실현을 보장해서 한편으로는 인간의 해방된 삶을 실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낙오하거나 패배한 사람에게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확보해주면 된다. 평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를 통해서 평등이념이 실현코자 한 인간다운 삶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을 자본에 예속시키는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지만, 시장경제를 비인간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사회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직접적 비판보다 시장경제를 비판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잘못이다. 시장경제를 통해 자본주의가 실현되기는 하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같은 것은 아니다. ‘사회적 시장경제’가 존재하는 것만 보더라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에 따른 독과점이 시장을 파괴하거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경우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의 작동을 중단시키게 된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결코 같은 것일 수가 없다.
요컨대 시회 전반적으로 이념문제에 대해 올바른 정리가 되어 있지 못하지만 특히 시민운동의 경우 사회주의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가 되어 있지 못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취함으로써 사회발전을 추동하기보다 사회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정보화와 세계화의 문명사적 대전환에 부응해 새로운 이념을 정립하지 못한 채 구시대적 보수 · 진보 개념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온갖 갈등과 비능률을 초래하고 있다. 필자는 오래전에 재야운동권이 3대 콤플렉스 곧 학생콤플렉스, 노동자콤플렉스, 북한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친북사회주의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일이 있는데, 이런 경향은 정도의 차이일 뿐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문명사적 대전환에 걸맞는 새로운 이념의 정립이 있어야 시민운동도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4. 한국 시민운동의 쇄신을 위한 과제
1) 이념문제에 대한 새롭고도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하겠다.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이념의 정립도 있어야 하지만, 기존의 이념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념의 차원이 아니더라도 시민운동에서 제기되는 여러 과제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검토한 다음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즉 매개 사안에 대한 철학적 검토를 통해 올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내부 학습을 통해 보수, 진보, 뉴라이트, 사회주의,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등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있어야 기존의 시민운동 노선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보화와 세계화에 따른 문명사적 대전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념을 정립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간의 잘못된 시민운동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시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이념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임을 고려할 때 이념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가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다.
2) 사안별로 ‘시민토론회’를 개최해서 어느 단체의 어떤 주장이 옳은지를 대중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새로운 과제의 실현을 위한 시민운동의 전개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잘못된 시민운동을 바로잡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사안별로 시민토론회를 개최해서 지금까지의 시민운동이 제시한 과제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리라고 본다.
참고로 그 주제를 예시해 본다.
3) 재정자립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지금 주요 시민운동단체들이 국민의 불신을 사는 중요한 이유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단체운영비를 지원받기 때문임을 고려할 때 시민운동의 쇄신을 위해서는 재정자립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고 본다. 시민단체가 많은 운영비를 필요로 하는 것은 백화점식 운영을 하기 때문이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민운동을 할 경우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시민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년에 한두건의 사업을 하더라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시민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정부(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 경우가 많으나 그 나라들은 대체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더라도 관변단체화하지 않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서도 정부나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지원받지만 그것 때문에 정부나 기업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위선과 기만의 극치일 뿐이다. 재정자립이 없고서는 불편부당한 건전한 시민운동이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