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선 한미군사동맹
- 희망의 푸른 물결(20)- 위기에 선 한미군사동맹

▲ 이인제 의원
연일 한미군사동맹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보도가 봇물을 이룬다.
어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관한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혼란을 느끼고, 뜻있는 사람들은 태산 같은 걱정을 쏟아낸다. 여야 정치권은 아직도 본질을 모른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언론의 문제 제기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노 정권이 미국을 향해 칼을 빼든 시점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작년 10월이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노 정권은 미국을 향해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다른 선택이 없는 미국으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군사동맹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선의로 이루어지는 관계다. 어느 일방이 파기를 선언하면 그 순간 동맹은 해체된다. 동맹을 계속 유지시켜야 할 의무는 어느 쪽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와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제의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한미군은 전시에 독자적으로 작전을 통제하거나, 아니면 한국군이 통제하는 작전에 동원되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는 셈이 된다.
그러나 전자는 한국의 군사주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후자는 미국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노 정권은 작년 10월 미국에 대하여 사실상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동맹의 본질적 변화를 선언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노 정권으로서는 이제 우리의 의지를 밝혔으니 미국, 너희들이 알아서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 미국의 움직임을 어렴풋이 보고 있다. 한국의 국방장관이 6년 안에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겠다고 말한 지 3일 뒤 대통령이 나서 5년 안에 환수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미국이 참다못해 반응을 보였다. 무슨 5년인가, 빨리 가져가라고 말이다.
사실 전시작통권을 미국에 빼앗긴 것도 아니다. 50대 50으로 구성된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전시 작전계획을 세워 한미 양군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연합사령관을 미군 대장이 맡고 있을 뿐이다. 현 사령관 벨(Bell) 대장이 직접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연합사령부는 군 통수권자인 한, 미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작전계획을 세워 보고한 다음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영국, 독일, 프랑스를 포함하는 나토(NATO)회원국들의 집단안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토사령관은 물론 미군 대장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어느 나라가 이 시스템 때문에 자국의 군사주권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하는가. 이 시스템은 집단안보를 위한 군사동맹의 보편적 방식이지 군사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은 마치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져간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그로 인해 자주국가의 체면이 손상당하는 것처럼 국민감정을 선동하면서 자기들의 숨은 목적, 즉 주한미군철수를 관철하려 광분한다.
역대 국방장관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집단으로 몰려가 현 국방장관에게 항의함으로써 비로소 이 문제가 이슈화되었다.
나는 몇 달 전 국방장관이 전시작통권 환수를 거론했을 때 한나라당의 국방위원 몇 명에게 전화를 걸어 국방장관의 그 발언은 곧 주한미군철수를 의미하는데 한나라당은 어떻게 대응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아무리 지도부에 심각성을 제기해도 아무 반응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동맹의 변질이 작은 문제인가. 아니다. 우리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보자.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에는 7만 명의 미군이, 제3의 경제대국인 독일에는 8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그 나라 정부는 이것도 모자라 미국과 더 튼튼한 동맹을 추구하기 위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저자세 외교도 주저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두 개의 핵폭탄이 터졌다. 모두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것이다. 하나가 터질 때마다 대략 15만 명의 일본인이 죽었다. 물론 대부분 시민이었다. 반미감정으로 친다면 일본이 우리보다 천배 이상 가져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일본의 지도자들은 일본 국민들에게 미래를 보며 일본의 이익을 위해 미일동맹을 지지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도 미국과의 전쟁에서 처참한 패배를 당한 나라이다. 이제 통일된 지도 17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통일 당시 동독 땅에 남아있던 36만 명의 소련 군대는 돈을 주어 돌려보냈으나 오늘까지 8만 명의 미군을 붙들고 있다. 모두 국가이익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오늘 노 정권은 반미감정을 부추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비장의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환수가 바로 그것이다. 경쟁 상대가 없는 초강대국 미국의 군대가 한반도에서 한국군이 통제하는 작전에 동원되기 위해 그대로 주둔한다는 이야기를 누가 믿을 것인가.
노 정권의 의도대로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급변할 것인지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앞세우고 벌이는 북의 정치심리공작에 우리 사회의 안정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우리 사회 내부에서 북의 대남전략에 내응(內應)하는 세력들의 발호는 또 어떻게 제압할 것인가. 일본, 중국,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일으키는 국제정치의 격랑을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가 키워 온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번영의 토대가 된 시장경제체제를 목숨을 걸고 지켜낼 세력은 커 보이지 않는다. 마땅히 앞장서야 할 사람들 가운데 등을 돌리고 달아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사회의 대혼란과 경제의 대붕괴는 시간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조국의 운명을 가르는 절체절명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미군사동맹, 주한미군의 존재는 이 냉엄한 현실에서는 물론이고 통일 이후에도 나라의 안보와 경제의 번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미국의 의사 결정은 느려 보이지만 한번 이루어지면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다.
미국은 우리 국민이 뽑은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리 국민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국은 내년 우리 국민이 어떠한 정권을 세우는지 지켜볼 것이다.
오늘 한미동맹의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획책하는 세력들을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들의 비뚤어진 역사관과 가치관 때문에 오늘 이 비극적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국가의 장래가 막히고 국민 앞에 재앙이 닥쳐오기 전에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세력들이 일어서야 한다.
전시작통권 환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워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냉엄한 국제권력정치 환경에서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이 어떻게 번영하며 생존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의 위대한 힘뿐이다. 아무리 선거를 통해 세워진 정권이라도 국가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러한 권력은 국민의 저항에 의해 사라질 뿐이다.
2006. 8. 10
이 인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