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자들이 왜 이 모양인가?
- 장기표의 정론탁설

▲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수상이 이웃 국가들의 거듭된 반대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일제침략의 원흉들 위패를 안치해 두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고이즈미 수상으로서는 일본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이고 또 공약이행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고이즈미 수상의 이 참배는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일인 동시에 앞으로도 일본이 이웃 나라를 침략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이웃 나라들은 물론 일본 국민들로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신사참배와 더불어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역사교과서 채택, 침략전쟁을 원천적으로 부인한 이른 바 ‘평화헌법’의 개정, 독도에 대한 강력한 영유권 주장 때문이다. 따라서 고이즈미 수상의 신사참배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요, 미래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고이즈미 수상의 이런 행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임은 물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웃 나라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본을 위해서도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제2차 대전에서 이웃나라를 포함한 연합국들도 심대한 타격을 받았지만 일본이 입은 피해는 이보다 더 크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아 약 3십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고, 재산 피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일본에 이런 피해를 가져온 전쟁 원흉들은 이웃 나라들로부터만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일본 국민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고이즈미 수상은 이웃 나라를 위해서는 물론 일본을 위해서도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고이즈미 수상은 왜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을까? 그것도 엄청난 집념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것은 일본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비전이 없음은 물론 동양의 평화와 공동번영 및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번영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2등국가 전락에 따른 일본국민의 불안감에서 오는 국수주의 열풍에 편승하여 승부사적인 수법으로 수상이 되었을 뿐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서 이 점이 확인되지만 고이즈미 수상이 수상으로 있으면서 동양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의미있는 제안을 한번도 내놓은 일이 없는 데서도 확인된다.
국민총생산에서 세계 제2위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의 정치지도자가 이처럼 평화와 공동번영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하니 일본의 불행이고 동양의 불행이며 세계의 불행이다.
그런데 고이즈미 수상만 그러한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나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도 그러한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자국도 어렵게 하고 이웃나라도 어렵게 하는 시대착오적인 국수주의를 부추겨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려 할 뿐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게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번영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없는 것은 세계의 불행이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으면서 국내경제는 거의 파탄상태에 직면해 있고 세계도처에서 분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미움을 사고 있으니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일본과 끊임없이 다투는데, 물론 그 일차적인 원인은 일본 측에 있지만 노 대통령이 동양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룰 아무런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되기까지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과 적대해서 살 일은 아니다. 지난날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공동번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국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한중일 세 나라가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나아가게 할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한중일 어느 나라 최고지도자도 그러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한 바 없으니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규탄하더라도 그것이 일본의 잘못을 질책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함께 번영해나가야 하는데 일본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한미일 세 나라의 정치지도들만 세계평화와 공동번영의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한가? 그렇지 않다. 세계 모든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대동소이해 보인다. 그러면 정치지도자들만 그러한가? 지식인들도 비슷해 보이고 특히 시민운동 등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일반 국민들은 어떤가? 마찬가지이다.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정치지도자들의 국수주의적 선동에 말려들고 있을 뿐이다. 상대국의 국수주의적 행태를 규탄함에 있어 똑 같은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그러한 규탄을 할 경우 상대 국가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다. 오늘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들이 혼란과 불안에 휩싸여 있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세계평화와 인류 공동의 번영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평화와 인류 공동의 번영을 이룰 비전과 전략을 제시할 정치지도자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