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잘못을 꼽아드린다
- 장기표의 정론탁설

▲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몇몇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점심을 들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한번 꼽아보라”고 말했다 한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이겠는데, 국민이 이토록 살기 힘들어 하고 나라가 온통 벌집 쑤신 듯 시끄러운데도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국민을 향해 항변하면서 자기변명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이것 같이 큰 잘못이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 공자가 일찍이 ‘過而不改 是謂過矣(과이불개 시위과의)’ 곧 잘못하고서도 고칠 줄 모르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고 했는데, 노 대통령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한 발언들은 하도 말 같지 않은 말들이라 따질 만한 가치가 있겠느냐 싶기도 하나(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치부할 것이다) 나라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대통령의 말인 데다 노 대통령이 답답해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좀 꼽아 달라고 하니 몇 가지만 꼽아드리고자 한다. 특히 이날 친정부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불러 점심을 함께 한 저의가 의심스러워 그냥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집권 3년 반 동안 있은 여러 실정과 실언, 독선과 오만 등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기도 하거니와 노 대통령도 말로는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 말을 중심으로 노 대통령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를 지적코자 한다.
우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꼽아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으로서 할 발언이 못된다. 나라가 어렵고 그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국민들이 보고 있다면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무조건 자신이 국정운영을 잘못해서 나라가 어렵다고 생각해야지 자기에게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天下興亡 匹夫有責’ 곧 천하가 흥하거나 망하는 데는 필부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했거늘 나라가 이토록 어려운데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일 뿐이다. 어찌 대통령의 잘못이 아닌가?
또 노 대통령은 이날 “주변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 임기는 이제 다 끝나간다”고 말했다 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겨두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자격 상실을 의미한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이 많은 터에 주변사람들이 말을 잘 안 들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남은 임기 동안 개혁을 추진하기보다 기존 정책을 관리만 할 생각이라면서 이런 뜻을 국민에게 ‘선언’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이 말은 앞으로 국정운영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대통령직을 그만두고 싶은데 지난날의 경험으로 봐서 대통령직을 그만두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대통령직은 유지하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이 자기를 지지해주지 않아 국정운영이 잘 안 되니 국민을 향해 ‘파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선언’하겠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의 표현이겠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포기하겠다는 것만큼 큰 잘못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대통령을 1년 반이나 더 두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대통령이 파업을 하면 이 나라에 어떤 변고가 생길지 걱정이다.
그런데 넋두리인지 결심인지 알 수 없는 이런 말들을 하면서 전임 대통령들에 비하면 자기는 낫다고 말했다 한다. 우선 전임 대통령과의 비교는 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서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인지를 지켜본 다음에나 할 수 있는 일이거니와 지지율 19%인 현직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지지율은 16%밖에 안 되었다고 하면서 자기가 낫다고 하는 것 또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여기다가 ‘전임 대통령들은 아들들이 구속된 데다 각종 게이트가 터졌는데 내 집권기에 발생한 문제는 성인오락실 상품권 문제뿐인데 성격이 청와대가 직접 다룰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전 정권에서 있었던 어떤 권력형 부정이나 게이트보다 더 큰 사건이 터질 것을 미리 알고서 방어하기 위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대통령답지 못한 발언이다. 우선 성인오락실 문제와 문화상품권 문제를 자신의 집권기간에 생긴 대표적인 문제로 거론하는 것을 보면 노 대통령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아는 것이 분명한데, 안다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어안이 벙벙하다. 성인오락실 문제와 문화상품권 문제는 권력실세의 개입여부와 상관없이 전국에 도박광풍이 몰아치게 해서 수많은 서민대중을 패가망신케 했다는 점에서 이런 도박기기를 허가는 하고 감독은 하지 않은 노무현 정권의 책임은 실로 엄청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성격상 청와대가 직접 다룰 문제는 아닌 것 같다’니 그러면 청와대는 어떤 문제를 다룬다는 말인가? 이 도박기기의 인허가 등과 관련한 부정비리를 청와대가 직접 다룰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이겠으나 그것도 말이 안 된다. 도박기기 및 문화상품권과 관련한 속전속결 허가는 권력실세의 개입이 없이는 도저히 있기 어려운 일이거니와 더욱이 대통령의 친조카가 관련 회사의 이사로 있으면서 그 회사의 주식을 28만주나 보유했던 때가 있는가 하면 스톡옵션으로 10만주나 받았다고 하는 터에 청와대가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이런 인식 자체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드러낸다. 어제 청와대가 밝힌 바에 의하면 노 대통령은 이미 2년 전부터 조카 노지원 씨를 ‘단속’해 왔다고 하는데, 이것을 해명이라고 하는지 청와대와 노 대통령의 수준을 알 만하다. 어리석은 해명보다는 차라리 이실직고하는 편이 낫다. 노 대통령은 어제 여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내 조카와 바다이야기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는데, 이 해명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정치공세’를 되뇌는 열린우리당 몇몇 사람 빼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논설위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성인오락실 문제와 문화상품권 문제를 슬쩍 언급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제기되는 것을 미리 막아보려는 얄팍한 술수였던 것 같다. 대통령이 자신의 집권기간에 생긴 대표적인 문제일 만큼 심각한 문제를 거론해놓고서 ‘성격상 청와대가 다룰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회피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분명히 지적해두건대 이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책임은 참으로 막중하다. 권력실세의 개입이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점에서도 대통령의 책임이 크지만, 백보를 양보하여 설사 권력실세의 개입이 없더라도 전국이 ‘도박공화국’이 되도록 만든 데 대한 책임을 대통령은 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건은 권력형 부정 이전에 나라를 도박공화국으로 만들어 서민대중의 파탄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어떤 게이트보다 그 폐해가 더 심각하다. 그런데도 책임이 없는 듯이 말하니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큰 잘못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날 보도하지 않기로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대통령이 ‘비공개’를 전제하고서 한 발언이 보도된 데 대해서도 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 비보도 발언을 보도한 언론에도 책임이 있긴 하지만 대통령은 이런 것까지를 고려하고서 사람을 만나거나 발언을 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역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날 한 발언이 보도되고서 노 대통령은 “허리띠 풀고 허심탄회하게 비보도를 전제로 한 얘기가 부정확하게 보도됐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누굴 만나 얘기하나. 정말 너무 하다. 슬프다”라고 말했다는데, 한심한 모습이다. 발언의 내용으로 보아 노 대통령이 과연 보도하지 말 것을 바랐는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비보도를 전제한 발언이었다 하더라도 이미 보도된 마당에 ‘누굴 만나서 얘기 하느냐’는 둥 ‘슬프다’는 둥 하는 것은 대통령답지 못한 발언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왜 몇몇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불러 점심식사를 함께 했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대통령이 심심해서 언론인들을 불러 한담을 즐겼을 리는 없는 것이고 무언가 목적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것이 궁금하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노 대통령이 언론인들에게 외교안보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한 자리였겠으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시간 반 동안 주로 자기 얘기만 한 것 같은데, 얼핏 보면 신세타령 같으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자기에게 닥칠 여러 비난이 걱정이 돼서 미리부터 해명을 해두고자 했던 것 같다. 특히 자기 지지세력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는 친정부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만나서 말이다. 특히 ‘바다이야기’와 관련해 입게 될 타격을 사전에 방어해보고자 한 의도도 컸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어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끝까지 국정의 집중력을 잃지 않을 테니 도와달라”거나 “마지막까지 위기관리 잘 하고 싶다”, “퇴임 후 열린우리당이 고문으로 받아주면 관료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에 들어가겠다”는 등의 말을 한 것 역시 퇴임 후의 안위가 걱정이 돼서 전방위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측은하기는 하나 대통령이 할 말은 못된다.
자신의 과오가 아무리 크더라도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았는데 퇴임 이후의 안위를 걱정해서 국정운영을 소홀히 한 채 자기변명에 급급해하는 것 또한 대통령의 중대한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관련해 지적할 만한 잘못이 많으나 이 정도로 그친다.
그래서 노 대통령에게 꼭 부탁드리고자 한다. 퇴임 후의 안위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그 걱정에 집착하고서는 국정운영을 결코 잘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을 잘못하면 퇴임 후에 당할 수모가 더 커질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국정운영을 잘 하는 것이 퇴임 후의 수모를 줄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국정운영을 잘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국정실패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으로 돌려야 한다. 자기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는 결코 자기를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어 한 구절을 다시 한 번 들려드린다.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곧 ’남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들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심기일전을 기대한다. 그렇지 않다면 용퇴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