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명동의 절차로 물의를 빚고 있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 지명자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 조문을 위반한 절차상의 하자로 헌법재판소장 국회 임명동의가 좌절된 전효숙 씨를 다시 헌재 소장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 씨에 대한 헌법재판관 인사청문을 국회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난번에 헌재소장 임명절차를 잘 몰라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인사청문안을 동시에 국회에 제출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 규정에 위반됨을 인정하고서 다시 임명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나 여당으로서는 지난번에 인사청문절차가 잘못되어 국회의 인사청문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헌법 조문상의 절차에 맞게 인사청문절차를 밟아 전효숙 씨를 헌재소장에 임명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야당인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집권세력으로서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과정에서 전효숙 씨는 헌법재판소장이 될 수 없음이 판명되었기 때문에 그런 절차를 밟는다고 해서 전 씨가 헌법재판소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바,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전효숙 씨에 대한 ‘헌법재판관 후보자(전효숙) 인사청문 요청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은 지난번에 노 대통령이 전 씨를 헌법재판소장 후보로 지명하여 임명동의안을 요청한 것은 헌법재판소장 임명절차를 위반한 것임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지난번의 잘못된 헌재소장 임명동의 절차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함이 없이 그것에 응했던 전효숙 씨는 헌법재판소장 임명절차를 알지 못했거나 아니면 임명절차가 잘못되었음을 알고서도 집권세력이 하는 일인 만큼 그대로 따르면 헌재소장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보아 그 절차에 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헌재소장 임명절차를 몰랐거나 절차가 잘못되었더라도 자신이 헌재 소장이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잘못된 절차에 응한 사람이 헌재소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전 씨는 헌재소장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런데 혹 지난번의 임명절차에 하자가 없었지만 한나라당이 이의를 제기해서 어쩔 수 없이 절차를 새로 밟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옳지 않다. 정당한 절차를 밟았는데도 한나라당이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절차를 새로 밟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적법한 절차를 밟았는데도 한나라당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한나라당의 이의를 무시하고 절차에 따라 추진하면 된다. 법에 명시되어 있는 일을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절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 전효숙 씨가 헌재소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번에 있었던 일련의 과정에서 전 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추종할 인물임이 만천하에 확연히 드러나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견제하는 지위에 있어야 하는 사법부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의 장이 되기는 부적합함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전 씨는 이번 파동 이전에 헌법재판관으로 있을 당시 ‘행정수도이전 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다른 헌법재판관 전원이 이 법의 위헌성을 인정했는데도 유일하게 노 대통령의 뜻에 부합하는 합헌 쪽의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노 대통령을 추종하는 인물로 인식된 일이 있는 터에, 이번에 헌재소장으로 임명하려는 과정에서도 청와대 쪽의 전화 한통에 헌법재판관직을 사퇴하는가 하면 자신의 문제로 한 달이 넘게 분란이 계속되는데도 청와대의 조치만을 기다리면서 침묵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눈치만을 보는 사람으로 인식되게 했다. 그러니 대통령을 견제해야 할 사법부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장이 될 자격이 없음이 판명되었다.
그런데 전효숙 씨 입장에서 노 대통령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신을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이 공연히 이의를 제시해서 자신에 대한 임명동의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 자신에게 어떤 흠결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헌재소장직을 단념하지 않는 것이 옳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이번에 노 대통령이 그를 다시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기 위해 국회에 인사청문을 요청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그 인사청문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장이 되겠다는 사람은 적법한 절차인데도 야당이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다시 인사청문을 하는 이런 편법에 동조해서는 안 되겠는데도 전 씨는 이 인사청문에 응할 것 같으니 이런 사람은 헌재소장이 될 자격이 없다.
셋째, 전효숙 씨의 경우 절차상의 하자는 물론 자질상으로도 헌재소장이 되기에는 부적합함이 여러 측면에서 판명되었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기어이 전 씨를 헌재소장에 임명하려는 것 자체가 전 씨를 더욱더 노 대통령의 ‘충복’으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더욱더 전 씨가 헌재소장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번에 온갖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전 씨를 끝까지 헌재소장으로 임명하려고 함으로써 전 씨가 완전히 노 대통령의 ‘충복’인 것처럼 낙인찍고 있는데, 이것은 전효숙 씨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어 헌재소장으로서의 자격을 더욱더 상실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관을 지냈고 헌재소장이 되려는 사람이 대통령의 충복으로 인식되게 하는 것은 엄청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전 씨가 이런 모욕을 참고 있는 것 같은데(혹 모욕으로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가 얼마나 비굴한 사람인가를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안스럽기조차 하다.
아무튼 전효숙 씨 같은 사람이 헌재소장이 된다면 이것은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크게 실추시키는 것은 물론 사법부의 독립을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인 만큼 이런 사람이 헌재소장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