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출처 : LG경제연구원 (서울=뉴스와이어) 2006년03월09일

최근 LCD TV 시장에서 소니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작년 4분기 기준, LCD TV 분야 부동의 1위 샤프전자를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를 두고 드디어 소니가 그간의 부진을 털어내고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짧은 기간 내에 LCD TV 시장을 석권한 원동력은 무엇인지 소니 전략의 특징을 중심으로 알아보고, 아울러 LCD TV 부문 소니의 공세에 따라 예상되는 파급효과와 국내기업의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브라비아로 TV 명가 자존심 회복
작년 9월 소니는 세계 최대 가전 시장인 미국을 필두로‘브라비아(Bravia)’라는 새로운 브랜드의LCD TV를 출시했다. 디지털 TV의 주력 디스플레이로 LCD를 채택, 이른바 LCD 올인 전략을 펼치겠다는 소니의 의지가 집약된 TV가 바로 브라비아이다. 브라비아란 최고 수준의 오디오 비주얼 융합구조(Best Resolution Audio Visual Integrated Architecture)라는 말의 이니셜로서, 말 그대로 업계 최고 수준의 화질과 음질을 갖춘 TV라는 뜻을내포하고 있다.
소니는 그간 CRT TV 시대에 이룩한 성공에 안주하여 LCD, PDP 등 신규 디스플레이 부문 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 평판 TV 시장에서 샤프와 마쓰시타, 그리고 LG전자, 삼성전자 등 국내기업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에 소니는 삼성전자와 합작회사(S-LCD)를 설립, 7세대 LCD 라인 공동투자를 통해 안정적인LCD 패널 조달처를 확보하는 한편, 아날로그 시대부터 축적해 온 화질 기술을 접목하여 브라비아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LCD TV를 출시했다. 그런데 출시 후 4개월이 채 못되어 LCD TV 시장에 일대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작년 2분기만 해도 8.1%의점유율로 4위를 기록했던 소니는 3분기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4분기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14.6%로 13.6%에 그친 샤프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전략 시장인 미국시장에서는 40%에 가까운 점유율로 경쟁사들을멀찌감치 따돌리는 성과를 나타냈다. 한때 TV의대명사로 자리잡으며 세계 시장을 휩쓸던 소니의 저력이 쉽게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처럼 짧은 기간 내에 거둔 성과는 놀랍기 그지 없다.
경영진의 과감한 의사결정이 성공 요인
이와 같은 괄목할 만한 성과의 배경에는 경영진의 과감한 의사결정이 자리하고 있다. 경영진의 과감한 의사결정은 서서히 침몰해가던 소니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다. 소니의 경영진은 그간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여 시장 트렌드 변화를 적시에 간파하지 못했던 과오를 겸허하게 시인했다. 이에 소니는 먼저 삼성전자와의 7세대 LCD 라인 공동 투자를 통해 이미 기회를 놓쳐버린 평판 디스플레이 패널 라인 투자 문제를 해결했다.
TV와 관련된 기술력과 브랜드력 측면에서는 한 수 아래로 평가되던 삼성전자와의 제휴 결정은 당시로서는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게다가 정확한 계약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니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계약조건이었다는 소문마저 나돌았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일본의 자존심을 팽개쳐버린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소니의 경영진은 안정적인 패널 조달 없이는 급성장 중인 평판 TV 부문에서 주도권을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삼성전자와의 제휴 결정을 과감하게 단행했다. 또한 이를 계기로 향후 TV 제품 라인업은 LCD TV와 프로젝션 TV를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겠다는 전략을 채택했다. 그 후 1년 여가 지난 작년 9월, 그간 디지털TV용 브랜드로서 시장에 널리 알려진‘베가(Wega)’대신 브라비아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새로운 브랜드 출범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고, 기존의 브랜드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등 리스크 요인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말을 떠올렸을까? 소니는‘베가’브랜드에 CRTTV에서 이어오던 예전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는 판단 하에 새로운 브랜드를 채택하는 승부수를 띄웠고, 현재까지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있다.
효과적인 마케팅 활동 전개도 주효
대대적인 자원 투입을 통해 적극적인 마케팅 공세를 펼친 점도 소니가 단기간에 LCD TV 시장을 석권하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브라비아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초기부터 대규모 마케팅 자원을 투입함으로써, 브랜드 교체에 따른 소비자의 혼란을 최소화하며‘LCD TV = 브라비아’라는 등식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소니는 브랜드 출범 관련 초기 마케팅 비용에만 1억 4천만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는 작년 1~3분기 기간 동안 일렉트로닉스 사업부 전체가 벌어들인 누적 영업이익의27%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처럼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대규모 마케팅 비용 지출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3분기 대비 5.9% 포인트라는 놀라운 점유율 상승을 보인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판매량 증가에 따른 마케팅 비용 상쇄가 조기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가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단순히 브랜드만을 알린 것은 아니다. 소니는CRT TV에서부터 축적해 온 고유의 화질 구현 기술을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다. 소니는 브라비아에 고유 화질 개선 엔진인 베가엔진 탑재와 함께 WCG(Wide Color Gamut)라는 기술을 적용,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자연스러운 색감을 구현하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특히 소니는 경쟁업체와동일한 패널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사 제품에 비해 뛰어난 화질 구현이 가능한 차별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오고 있다.
예전에 비해 판매 가격을 상당히 낮춰서 출시한 가격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소니는 브라비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출시될 것이라는 얘기를 본격적인 출시 이전부터 언론에 흘림으로써 소비자들의 기대 심리를 극대화했다. 아니나 다를까, 브라비아가 기존 제품 대비 상당 수준 인하된 가격에 출시되자 시장에서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향이 일어난 것이다. 그간 평판 TV 분야에서 가격 하락을 주도해 온 것은 중소 브랜드나 중국계 브랜드였다. 하지만 브랜드 프리미엄을 향유하고 있고 화질로 대표되는 성능 면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소니가 오히려 더 주도적으로 가격을 내리자 소비자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LCD TV의 경우 업계 전체가 급격한 가격하락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작년 3분기부터는 소니의 하락률이 산업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소니가 고가 전략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전 가격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추어 출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평균 판가는 여전히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부문 최고의 브랜드력을 갖춘 소니가 오히려 가격 하락을 주도하는 듯한 양상은 전무후무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소니의 가격 정책이 대대적인 브랜드 마케팅 활동과 결합되면서 업계 전체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니의 공세, 상당 기간 지속될 것
LCD TV 부문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소니의 공세가 시장 석권으로 이어지자 업계와 시장의 관심은 이제 이와 같은 소니의 공세와 시장 주도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먼저 소니의 공세는 향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소니는 가정용 게임기인 PS3와 휴대용 게임기PSP,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노트북, PDA, 휴대폰, 그리고 TV 간 고화질 컨텐츠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HD(High Definition) 월드’를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바로 이 HD 월드의 중심에 LCD TV가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에 LCD TV 시장 주도권을 쉽게 내 주려 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따라서 적어도 확고한 1위 자리를 확보할 때까지는 가격 하락 주도와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 전개 등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본다면, 그간 소니는 공식적인 표명을 자제해 왔지만 삼성의 8세대라인 투자에도 참여할 공산이 크다. 50%만 부담해도 2조원을 훨씬 상회하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LCD TV 시장 주도권 확보에 패널 내재화가 필수적임을 소니가 간과할 리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이와 같은 소니의 LCD TV 시장 공세가지속적인 성과 창출로 이어질 지의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먼저 1위 자리를 빼앗긴 샤프를 비롯한 경쟁사의 강한 견제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는 소니가 기술력 및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동시에 적절한 가격 전략으로 대응할 경우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있다.
오히려 심각한 위기의 징후는 소니 내부에서 발견되고 있다. 최근 소니가 새로 출시한 일부 TV모델에서 총 시청 시간이 1,200시간을 넘으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거나 켜지는 불량 사건이 발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조사 결과 소프트웨어의 결함에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고 소니 측에서 즉각적인 대응 조치를 발표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소니의 브랜드 이미지가 적잖이 실추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소니의 발빠른 대응으로 인해 이 사건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이 사건이 그간 강도 높게 진행되어 온 구조조정에 따른 부산물, 즉 오퍼레이션이나 조직 문화 등 근본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비슷한 악재가 향후에도 반복해서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소니의 LCD TV 시장 주도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지의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2분기 정도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평판 TV 시장의 경쟁 구도에 격동 예상
하지만 지속적인 시장 주도 여부에 상관 없이 소니가 LCD TV 시장에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음에 따라 평판 TV 시장의 경쟁 구도에는 적지 않은 격동이 예상된다.
먼저, 대표적인 프리미엄 브랜드인 소니가 가격을 큰 폭으로 인하하면서 최근 판가 하락 추세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던 평판 TV 부문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이 재개될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패널을 내재화하지 않아 추가적인 가격 인하 여력이 없는 중소업체들과 중국계 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패널을 내재화하고 있는 국내의 대기업들도 브랜드, 디자인 등가격 이외의 부문에서 효과적인 차별화 포인트를찾지 못할 경우 이러한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것이다.
둘째, 40인치 대를 중심으로 LCD와 PDP간 주력 디바이스 경쟁이 보다 거세질 전망이다. LCD를 주력으로 내세운 소니의 공세가 지속되고, 샤프를비롯한 경쟁사의 반격도 본격화되면서 LCD에 의한 40인치 대 시장 잠식을 좌시하지 않으려는 PDP업계의 대응도 활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LCD TV 부문에서 40인치대 표준사이즈 경쟁 전망에도 다소 변화의 조짐이 나타날것으로 보인다. 소니의 경우 삼성전자와 함께 40인치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반면, LG전자와 샤프, 필립스 등은 42인치를 표준 사이즈로 밀고 있다. 지금까지는 먼저 시장을 창출한 PDP가 42인치를 표준으로 정착시켰고, 대만의 AUO와 CMO가42인치를 표준으로 채택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함에 라 LCD에서도 42인치가 표준 사이즈로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대만 기업들은 당초 예상보다 7세대 투자를 계속 늦추고 있다. 따라서 만약 소니의 LCD TV 시장 공세로 인해 시장 상황이 바뀌게 될 경우 대만 기업들이 당초 계획을 수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어 표준 사이즈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력 격차 단축 기간을 최소화해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TV 시장의 경쟁 패러다임에는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TV제조 기술의 보편화, 표준화로 인해 선발업체와 후발업체간 기술 및 성능 차이는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이에 따라 TV 시장의 경쟁 패러다임이 단순히 트 제조만으로는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LCD TV 시장을 석권한 소니의 전략을 살펴 보면, 마치 TV 시장의 경쟁 패러다임을 CRT TV 시대로 되돌리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소니의 브라비아 전략의 중심에는 고유의 화질기술에 대한 강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지나지않고 본질적으로는 소니도 TV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인정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후발업체들이 기술력 측면에서 소니를 따라 잡는 시기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전에 기술력의 우위를 더욱 강조함으로써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최근 소니의 공세는 대대적인 자원 투입을 통해서라도 조기에 시장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판단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니의 공세에 대한 국내기업들의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기술 격차를 좁히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디지털TV는 아날로그와는 달리 화질 이외에도 차별화의 지가 많다.
다양한 부가 기능 구현 및 디자인 등에서의 차별화를 화질 개선 노력과 병행할 경우, 상대적으로 원가 우위를 보이고 있는 국내기업들의 산은 충분하다. 이러한 전략은 합리적인 소비자가 지배적인, 세계 최대의 TV 시장 미국에서 특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 배수한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