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원내 진출 후 2년간 진행한 여성국감의 문제의식을 이어, 지난 8월 시행에 들어간 노무현 정부의 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노동자서민과 여성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공동국감을 진행했다.
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은 2010년까지 정부 각 부처에서 추진할 230여개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담은 중장기계획으로, 정부는 출산·양육부터 고용, 복지, 노후 문제까지 국민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방대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총 32조의 예산이 투자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세부 예산계획을 살펴본 결과, 228개 사업 중 108개, 즉 47.6%가 예산이 전혀 소요되지 않거나 아예 책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는 아동수당, 경로연금, 입양아 무상보육·교육비, 고령자 주택개조 지원 등 상당한 예산이 필요한 사업들이 많아 이러한 사업들이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오히려 저소득층 가구와 여성을 배제하거나 또 다른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출산과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제도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최대 22배까지 접근성에 극심한 격차를 보여, 소규모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저소득층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 사업이 정작 가장 소득이 낮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애초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또 보육, 교육, 노인요양 등 공공부문에서 필수적으로 제공해야 할 사회서비스가 민간과 시장영역에 맡겨지면서 영리기업들만 이득을 보거나 파행 운영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방과후학교 사업은 사교육비 절감과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기회 제공을 위해 시행되고 있으나, 대부분 입시용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며 중간에서 교재 판매, 강사 파견, 거액 논술 강좌 개설 등 영리기업의 배를 불리고 있어 교육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증가하는 사회서비스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정부는 보육, 간병, 방과후교육 분야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고 있으나, 대다수가 여성인 사회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거나 월 100만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대책에는 이에 대한 안정적 인력정책이 누락되어, 자칫 저소득층 여성노동자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 우려된다.
또 다자녀 가정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조세, 주택정책도 저소득층 가구에게 실질적 이득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자녀 추가 소득공제는 이미 면세점 이하에 있는 50.7%의 근로소득자에게 아무런 추가 혜택을 주지 못하며, 소득이 많을수록 감면 혜택이 늘어나는 역진 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8월 판교 2차 분양부터 시행된 3자녀 무주택자 특별분양 사업 역시 주거비 지원을 위한 추가 예산이 없어 저소득층 다자녀 가정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각 정책의 효과가 계층,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어 국민적 갈등과 사회위기를 심화시킬 위험성이 높다. 정부 대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높아지고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양극화와 빈곤, 소득과 고용 불안정에 따른 사회위기가 많은 국민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으며, 이것이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미래에 닥쳐올 위기를 부풀리기보다 현재 한국사회가 처한 사회위기를 차분히 해소해 나갈 때만이 국민들에게 진정한 ‘희망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2006년 11월 2일 (목) 오전 9시 30분 국회 정론관
- 민주노동당 최순영 원내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