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가는 길 (1) 교육 대혁명
- 희망의 푸른 물결 (27)

▲ 이인제 의원
우리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은 절망하고 끝내 죽음에 이른다. 길을 잃은 가정은 파탄을 맡고 가족들은 고통에 몸을 떤다. 길을 잃은 기업은 파산하고 구성원들은 거리를 헤매게 된다. 길을 잃은 사회는 분열하고 이유 없이 서로를 상처내기에 바쁘다. 그리고 길을 잃은 나라는 표류하다 끝내 고립에 빠져 스스로를 망치고 만다.
이제 우리는 다시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역사의 길은 개척하고 창조하는 길이지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일 수 없다. 또 그 길은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어야 한다.
낡은 지역패권과 기득권 의식에 젖어있는 세력이 나라를 정체(停滯)에 빠뜨린 결과 그 반동(反動)으로 낡은 좌파 이념세력이 정권을 잡아 나라를 수렁에 몰아넣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잃었고 열병(熱病)과도 같은 증상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의 꿈을 앗아가는 부동산 대란(大亂)도 따지고 보면 갈 길을 잃은 무더기 돈이 만만한 부동산에 와 부딪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우리가 찾아나서야 할 미래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는 교육의 대혁명이다. 둘은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선점(先占)이며, 셋은 첨단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다. 넷은 생명의 물이 흐르고 풍부한 유전자원이 살아 숨쉬는 생태(生態)의 복원(復元)이다. 다섯은 인류의 감성을 지배하는 문화의 창조이며 마지막은 민족통일의 완성이다.
오늘은 교육의 대혁명에 관하여 말해보자.
며칠 전 대입수능시험이 치러졌다. 6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성적이 차례로 매겨질 판이다. 또 얼마 후에는 대학별로 논술시험이 치러지는데 그 결과가 합격 여부에 관건이 된다고 한다. 어느 저명한 평론가가 자신도 쓰기 어려운 논제(論題)가 출제되고 있다는 고백을 할 정도이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할까.
한마디로 오늘의 우리 교육은 대학입시에 맞추어져 있고, 모든 젊은이와 그 부모들을 이 획일적 틀에 몰아세우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입시지옥이라고 부른다. 이 지옥을 지나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진정 희망의 지평이 열리는가. 아니다.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우리 젊은이들을 입시지옥에 가두고 꿈과 열정을 시들게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제 교육에 대한 일대 혁신에 나서야 한다.
먼저 획일주의(劃一主義)를 허물고 다원주의(多元主義)로 가야 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은 교육의 수요(需要)에 맞춰 그 설립과 교육내용을 다원화해주어야 한다. 교육의 내용 또한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의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다원성과 유연성이 반영되어야 한다.
둘째, 대학에 제한 없는 자율(自律)을 허용해야 한다. 학생을 선발하고 학사(學事)를 관리하는 모든 자유와 책임을 대학에 주어야 한다. 이는 헌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원할 의무는 부담하나 간섭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국민과 수요자의 평가에 의해 좋은 대학은 발전하고 나쁜 대학은 도태(淘汰)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초등, 중등 교육을 지방의 몫으로 해야 한다. 학교의 설립과 운영, 교원의 인사 등 권한이 지방자치로 넘겨져 보다 좋은 교육을 향한 지방간의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방간에 건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재정, 교육의 내용과 수준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으면 된다.
넷째, 젊은이들을 창조적 인간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창조의 원천은 무엇인가. 상상력(想像力)이다. 상상력은 무한한 독서와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다. 나라의 젊은이들을 획일적 기준으로 줄 세우기 하는 수능시험, 별도의 과외공부를 하지 않고는 접근하기 어려운 논술이 있는 한 젊은이들이 풍부한 독서와 경험을 넓힐 자유를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나는 수능시험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검증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마치 운전면허를 따면 면허시험 성적은 의미가 없고 누구나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수능을 통과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대학을 지원하고 각 대학은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한다. 대학이 창조적 인재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면 자연 학생들의 지식 총량 보다는 상상력 크기를 선발의 기준으로 삼게 될 것이다.
다섯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돈이 부족하고 경쟁에서 밀린 학생들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지금도 방송통신대학 등의 제도가 운용되고 있지만 앞으로 국립, 시립, 도립 대학들을 폭 넓게 운영하면서 자기 지역 주민들에게 폭 넓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하지만 입학은 쉬워도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시제(時制)를 미래에 두는 교육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요즘 ‘부의 미래’를 출판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만난 일이 있다. 7년 전이었는데 그는 유난히 교육의 시제를 미래에 둘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교육은 과거나 현재에 유용한 지식이나 접근방법을 가르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그 학생은 언제 사회에 진출하는가. 10년, 20년 뒤이다. 10년, 20년 뒤에도 그 지식이나 접근방법이 얼마나 유용할까.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필요 때문에 존재한다. 이 평범한 진리가 교육혁명의 이론적 중심이 되어야 한다.
끝으로 세계인을 길러내는 교육이어야 한다.
먼저 요즘 진행되는 세계화의 추세를 통찰해 보자. 지방마다 나라마다 이 세계화의 물결에서 낙오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쓴다. 세계로 나아가려면 자신의 정체성을 버려야 하는가. 아니다. 세계로 깊이 나아갈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바로 세계로 나아가는가. 아니다. 나라와 나라끼리 손을 잡고, 유럽연합(EU)처럼 블록을 형성하며 세계로 나아간다.
우리의 젊은이들을 세계인으로 교육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아시아인으로서, 몽골리언으로서, 우랄 알타이어족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대하며 세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교육이다. 나는 고등학교까지 우리 젊은이들이 국어 이외에 4개국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어떤 나라가 미래의 강국이 될 것인가. 의문의 여지없이 세계를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창조적 국민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이다. 언어야말로 국민들이 세계로 나아가는데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도구이자, 풍부한 상상력의 수단이 아닐 수 없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필수로 하고 그 밖의 언어를 하나 선택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 유용한 도구를 들려줄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의 해답을 얻으려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 바람이 불고 있는 ‘영어마을’이 그 해답일까. 그 건설에 드는 막대한 비용,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제약(制約), 단 며칠간의 수련(修練), 이런 요소들을 생각하면 머리를 좌우로 흔들게 된다. 해답이 아닌 것이다.
나는 세계 모든 대륙에 우리 민족이 문화단위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현실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해외 동포사회의 2세, 3세들은 그 나라 언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젊은이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진정한 조국 한국에서 일정기간 공부하기를 열망한다. 정부가 이들을 우리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 등 정책적 뒷받침을 하고 그들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그 나라의 말(言)을 가르치도록 하면 된다. 그 나라의 글(語)은 주로 우리 선생님들이 맡아도 될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먼저 말을 배운다. 귀가 열리고 입이 떨어진 다음, 눈과 머리로 글을 배우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언어교육은 먼저 글을 가르친다. 그래서 오래도록 외국어를 공부해도 말을 하기 어렵다. 조국의 배려로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는 해외 동포 젊은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를 배정받고 영어, 일어, 중국어 등 그 나라 말로 우리 어린이들과 즐겁게 놀아주며 가르친다면 놀라운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일본에는 문부성이 각 나라에서 원어민교사를 채용하여 외국어 교육에 투입하는 ‘Z Program'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일본이 아무리 부자라도 모든 국민을 세계인으로 키울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또 우리와 같은 해외동포사회를 갖고 있지 못하다.
지금 우리 교육부도 일부 원어민 교사를 활용하고 있으나 이 제도로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보자. 10년, 20년 후의 미래는 눈 깜짝할 사이 현실로 다가 온다. 그 때 세계를 무대로 일본, 중국의 젊은이들은 언어의 제약 때문에 자유자재로 활동하지 못하는데 우리 젊은이들이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마음껏 자기 재능을 발휘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 젊은이들의 운명은 물론이고 나라의 운명도 달라지고 말 것이다.
그 미래가 오늘의 교육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젊은이를 풍부한 상상력의 창조적 인간으로, 지구촌을 주름잡을 세계인으로 키워내는 교육의 대혁명에 서둘러 불을 붙여야 한다.
2006. 11. 22
이 인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