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
- 희망의 푸른 물결(32) 평화의 봄은 오는가

▲ 이인제 의원
완연한 봄의 기운을 느낀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따라 달리면서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 부지런한 철새들은 이미 북으로 떠나고 몇 마리 남은 철새들이 여기 저기 외롭게 물질을 한다. 머지않아 저들도 떠나고 이 땅의 생명들이 그 빈 자리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엊그제 북경에서 북핵문제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재작년 9. 19 공동성명이 채택되었을 뿐이었는데, 그 때 언론은 얼마나 호들갑을 떨고 국민은 또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러나 이번에는 ‘성명’ 정도가 아닌 ‘합의’가 이루어졌는데도 언론이나 여론이나 냉정하기만 하다. 그저 노 정권만 잘된 일이라고 떠들며 불이 나게 평양으로 달려가 장관급 회담을 열고 지원을 하지 못해 안달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겨울이 풀리고 평화의 봄이 오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이번 북경에서 합의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노력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 합의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정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일 큰 문제는 대한민국이 합의의 진정한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멍석을 깔아주고 미국과 북한이 그 위에서 합의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저 주변을 맴돌며 눈치를 살폈을 뿐이다. 1994년 제네바 협상 때와 똑 같은 현상이 재현된 것이다. 노 정권의 반미자주는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이번 합의로 결국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도발은 사실상 사면(赦免)을 받았다. 미국은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UN제재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북한이 겸손한 자세로 사면을 받았다면 또 모른다. 북한은 시종일관 큰소리를 치며 당당하게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추인을 얻은 셈이다. 미국이나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하여 단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북한이 상황에 따라 제2차, 3차 핵실험을 하여도 또 이를 인정하고 그들의 요구를 따라 협상테이블에 끌려 다녀야 할 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번 합의는 북한 핵의 완전 폐기로 가는 첫 단추가 되지 못한다. 북한이 핵 보유를 추구하는 야망의 본질에 변화를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반대로 야망을 키워준 결과를 초래하였다. 북한은 이제 더 이상 국제사회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평양은 지금 협상은 그저 일진일퇴의 전략전술일 뿐 핵 보유로 가는 대로가 활짝 열렸다고 환호할지 모른다.
왜 이렇게 불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졌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곤경에 처해 있고 또 이란 핵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여 우선 북핵문제를 미봉(彌縫)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 이번 합의는 미봉일 뿐이다. 우리는 이를 알고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 큰 낭패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어설피 봉합해 놓은 장막 안에서 평양이 어떤 책략을 추구하는지 잠시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일찍이 북핵문제의 가장 큰 당사자는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하였다. 과거 정권들이 스스로 이 문제에서 발을 빼고 미국과 담판하여 해결할 문제라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지금 서울은 합의를 만드는 멍석 위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입장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제1의 당사자로서 전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제 북한과 미국이 한반도 평화의 봄을 만들어준다는 환상을 버릴 때가 되었다.
지구가 멈추지 않는 한 자연의 봄은 찾아온다. 그러나 죽어 있는 나무에 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살아있을 때에만 봄과 함께 힘찬 성장이 시작되는 법이다. 우리는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 변화로부터 점점 국외자로 밀려나고 있다. 우리를 배제한 가운데 그들만의 힘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성취된다고 가정하자. 그 때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 평화의 봄의 주인은 우리가 아닐 것이다.
오늘 북경의 합의를 보면서 나는 감히 말한다. 바로 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 평화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한다. 우리가 바쳐야 할 헌신을 게을리 하면 평화의 봄은 오지 않는다. 이 미봉의 합의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한 평화를 향해 자세를 가다듬을 때라고.
2007. 2. 16
이 인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