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한인 변호사의 외규장각 반환 소송
- [네티즌 칼럼] 외규장각 의궤 반환 소송을 지지하며

며칠 전, 신문에서 아주 기쁜 소식을 읽었습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프랑스 정부에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를 한국에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야기였죠.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되돌려 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왜 프랑스로 건너갔는지, 우리는 그것들을 ‘왜’ 돌려받아야 하는지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42년 전인 서기 1866년 11월 19일, 로즈 사령관이 이끄는 프랑스군 1천여 명은 조선의 보물창고인 강화도의 외규장각에 불을 지릅니다. - 이 때 불타버린 외규장각 건물은 아직까지 복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지금은 터만 남았죠) - 그들은
- 의궤 345권(그들의 기록에는 “가철된 큰 책”으로 나옵니다)
- 가철된 작은 책 9권
- 흰 색 상자에 든 소책자 13권
- 소(小)책자 10권
- 소책자 8권
- 한/중/일 지도 1점
- 천체도 1점
- 족자 7점
- 한문이 적힌 대리석판(아마 왕의 책봉사실을 적은 옥책玉冊인 듯합니다) 3점
- 대리석판을 담고 있는 작은 상자 3개
- 갑옷과 투구 3점
- 가면 1개
를 약탈한 뒤 나머지 물건들은 내버려둔 채 불을 질렀죠. 그래서 왕족의 신분표지물 19점, 어제(임금이 만들었다는 뜻) 어필물(임금의 글씨) 61점, 의궤 213종 373책, 기타서적 4,338책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가운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다시말해서 복사본이 없는) ‘유일본 의궤’는 235권이나 되었으니, 그 손실이 보통 큰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죠.
더 안타까운 일은 약탈당한 것들의 대부분은 행방을 모르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나마 있는 곳이 알려진 의궤 300권(김 변호사가 반환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의궤들입니다)도 서기 1978년 10월 28일 박병선 박사가 반환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이유 별관의 파손도서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죠(따라서, 저는 “우리가 보관하지 못할 바에는 프랑스가 보관하고 있는 편이 낫지 않느냐? 그들이 더 잘 보존할 텐데....”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창고에 처박아두고 난 뒤 곧 잊어버리고 1세기가 넘는 기간동안 내버려두었는데 어떻게 ‘잘 보존했다’는 말이 나옵니까?).
박 박사님은 이 사실을 알아낸 뒤 한국정부에 의궤들의 반환 협상을 촉구하셨으나, 그 때문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밉보여 사직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박사님의 노력이 완전히 헛되지는 않아서 서기 1993년 9월 15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한 권인『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내놓으면서 이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죠.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만약 한국정부가 고속철도를 달리는 열차를 ‘떼제베(TGV. 프랑스의 철도회사가 만드는 열차임)’로 고른다면 그 의궤 뿐만 아니라, 외규장각의 다른 의궤들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유물을 갖고 있는 국립도서관은 “무조건 반환은 있을 수 없다. (의궤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다른 유물과 바꾸자.”고 말하며 반환을 거부합니다.
그 때 도서관의 여성 직원들이 “이 물건은 절대 못 준다”고 떼를 쓰며 울부짖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정부는 떼제베를 고른 한국 정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사족을 달자면 그 때 울부짖은 직원은 지금은 도서관의 주요 책임자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군요. 이런 게 ‘프랑스식(式) 정의’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금까지 반환을 하지 않고 있죠. 이것이 김 변호사가 프랑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 이유입니다. 약탈의 피해자인 우리는 이 소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김 변호사의 소송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만약 그분이 소송 비용이 모자라서 고민하신다면 우리가 푼돈을 모아서 보내는 게 어떨까 합니다).
*덧붙임 : 김 변호사님이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거셨으니, 이제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프랑스 해군이 병인양요 때 의궤를 약탈해 갔다면, 미 해군은 신미양요(서기 1871년) 때 조선군의 수자기(帥字旗. 수帥자가 새겨진 깃발)와 “각종 군기 50개”를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수자기는 지금 미국의 해군사관학교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데, 한국정부가 돌려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그 요청을 전혀 들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약탈당한 문화재는 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하여, 이 문제를 풀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 글 학술 마을지기 잉걸님(www.freechal.com/barosa)
※참고자료
- KBS 역사스페셜「사라진 보물창고, 외규장각」
-『역사 속의 역사 읽기 3』(고석규/고영진 지음, 풀빛, 서기 1996년)
- http://www.koreandb.net/dictionaries/Viewframe.aspx?id=4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