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의 감성지대> 가족사랑 민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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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6-03-12 04: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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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가 주어지면 사랑은 금새 부담스러운 것이 된다.

바닷가에서 두 모자가 살았다. 두 사람의 삶은 넉넉지가 않다. 하루는 어린 아이가 갈매기의 알을 주워왔다.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면서 요리를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음식을 하는 것이 기뻤다.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아들은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아이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게 위해 매일 갈매기 알을 가져왔다. 더 이상 갈매기 알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아들은 누가 잡아 그물 망태기에 담아둔 펄펄 뛰는 고기를 가지고 집으로 왔다. 어머니는 기뻐하면서 아들을 위해 맛있는 생선요리를 해주었다. 다른 날 아들은 남의 집 오리를 가지고 왔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오리요리를 해줄 수 있어 기뻤다.

이렇게 아들은 유명한 도둑으로 어른이 되었다. 남의 집을 털다가 살인을 하게 되었다. 그가 기로틴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향해 한없이 울었다. 아들이 말했다. "세상사람들이 다 나를 불쌍하게 여겨도 어머니 당신은 아닙니다. 내가 처음 갈매기 알을 훔쳐왔을 때 왜 그 때 그 일이 나쁜일이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까?"

이 얘기를 누구로부터 언제 들었는지 모르겠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시공간을 초월해 증명된 경험적 지혜일까?

한국 어머니하면 연상되는 말은 희생과 인내인 것같다. 한국 어머니 상은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태어난 유복자를 행상을 하면서도 아들을 출세시킨 어머니가 아닐까? 남편의 외도에도 꿋꿋이 가문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며 자식을 키운 어머니... 그리고 남편이 늙고 병들거나 죽어서야 비로소 아내의 자리가 찾게되어도... 자신이 살아온 삶이 너무 기구해 책으로 쓰면 한권의 책으로도 다 쓰지 못한다는 우리들의 어머니.

자식을 더 잘 입히고 더 잘 먹이고 더 잘 교육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어머니라는 이름. 가족과 사회는 은근히 이러한 희생을 강요하지 있지는 않는가?

양반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젊은 며느리에게 수절을 강요하는 사회. 그 며느리 자리깨 물이 어는 소리를 들으며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렀다고 했던가?

나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병든 사회라고 생각한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요구하는 것을 착취라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라 이름하더라도 "With pleasure!"가 아닐 때 이는 나중에 보상을 바라게 되고 기대만큼 보상이 되지 않으면 원망이 되고 한이 맺힌다. 그래서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이 기대에 어긋나면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라는 탄식이 나온다. 그 자식 다행히 부모 맘을 알아 효도를 하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이 없겠지만.

아들이 빚을 얻으로 부자에게 갔다. 부자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는 빚도 없고 젊고 힘이 있으니 열심히 해서 갚겠습니다.>
그랬더니 부자는 말하더란다.
<늙으신 부모가 살아계시지 않는고?>
<그렇습니다. 어르신!>
< 그 두 노친네가 그대의 빚이 아니고 무엇인고?>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을 사랑해야 한다는 구호는 천박하다. 가족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남편은 부정한 돈을 가져오고 아내는 겟돈을 떼먹고 아들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컨닝을 한다.

그렇지만 먼저 자신을 깊이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아름답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거지가 내게 사랑을 고백하면 <당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어요.>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사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기 위해, 사랑을 주기위해 자신이 먼저 사랑할 준비되어야 한다. 자신에게서 사랑이 꽃피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을 한다고 고백하지 않아도 그 향기에 반해 내가 먼저 코를 들이댈 것이다.
<당신에게선 장미꽃 향기가 나는군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신뢰한다. 그 때 선택한 희생은 희생이 아니라 자기를 성취하고자 자기의 에고를 거부하는 하는 용기있는 실험이며 그만큼 자신의 사랑이 그리고 신뢰가 타인에게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것이다.

나의 가족에 대한 생각은 아무렇게나 내던져도 깨어지지 않을 프라스틱 잔 같은 것이라기 보다 깨어질 것이 두려워 소중히 다룰 얇은 크리스탈 잔 같은 가족이기를 원한다.

자신을 진정 사랑하기만 하면 그 영롱한 크리스탈 잔이 깨어지지 않도록 다룰 수 있는 충분한 기술이 터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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