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醜態) 민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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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6-03-07 01: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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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醜態), 추저분하고 창피스러운 태도나 짓거리라고 정의되어 있다. 추저분하다는 말은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말이다. 똥이 추저분한가? 그것이 있을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렇다. 모든 것, 모든 일은 상황에 맞는 각자의 자리가 있는 법이다. 불어에도 같은 뜻의 속담이 있다.(Chaque chose a sa place.)

나는 추태라는 말을 할 때 우선 술주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술 주(酒)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정에 물이 든 목이 긴 닭처럼 생긴 술독같다. 술꾼이 술을 마시고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를 지나 더 많은 술을 마시면 아예 술독이 된 술꾼은 소변을 보게 된다. 소변으로 물을 다 내보냈으니 그 빈공간에 귀신이 차고 든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더러울 추(醜)이다. 이는 순전히 김경숙식 억지해석이다. 또 다른 재미있는 해석을 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몇 수를 접고서라도 배우겠다.

나는 프랑스인들의 술버릇을 상당기간 지켜본 사람이다. 그들의 술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술을 취할 정도로 마셔 술분위기를 깨뜨린 추태를 부린 이들에 대해 거의 사회 매장급 무관심을 표출한다. 술을 이기지 못해 술주정을 부리는 이들에 대해서 상종을 거부하기 때문에 한 번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린 인간은 그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에 신뢰를 잃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것을 잃는 것이 아닌가?

프랑스에서 내가 교류한 친구들과의 파티에서는 나는 그들의 술주정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사실 내가 본 알코올 중독자들은 파리 거지 부부가 고작이었다. 길거리에 자면서도 도수가 높은 싼 알코올을 마시다 순찰중인 경찰에 의해 술병이 빼앗긴 것을 억울해하며 경찰관에 대들었지만 화가 난 경찰에 의해 술이 땅에 다 부어진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권리>를 외쳐대고 있었다. 요즘 프랑스 청소년들은 부모 세대들의 음주에 반발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술을 거부하고 고기먹는 것을 거부하는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편, 영국인들의 술주정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 관대하다고 들었다. 술을 먹고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 실수를 인정해준다는 말이다. 한국은 술에 대해 매우 관대한 것 같다. 술 먹은 개라니 하면서 술에 취했으니 개짓을 하더라도 그것이 술이 깬 인간의 인격과 연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번 한 국회의원의 술주정으로 인해 그의 정치적인 생명에 치명적인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던가! 파티장의 풍경은 영국 사람들은 무수히 말을 하고 프랑스 인들은 춤을 춘다.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싸운다!!

나는 다툼을 별로 꺼리지는 않는다. 다툼은 진화를 인한 과정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역을 앓으면 열이나고 발진이 생길 때는 고통스러우나 병을 앓고나면 다시는 같은 병에 걸리지 않는 면역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화해를 하지 못하는 다툼이고 사과를 하지 못하는 자기 아집 내지는 자기합리화이다.

전체를 이렇다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그것도 십인십색의 다양성이 난무하는 인간사에 나는 분명 내가 경험한 사회의 일면들이라 전체적이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전개하는 이유는 이 또한 전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자신의 술에 대한 내성과 그리고 그 태도가 짐짓 자신의 사회적 인격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통찰해볼 자기 이해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어서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회문화적 압력을 갖고 있는 사회일수록 아마도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회, 술취할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될 필요이상의 스트레스가 축적된 것이 그 이유가 되지 않을까도 싶다.

이전 그리스 상류사회에서는 귀족 자제들을 교육하는 한 방편으로 노예들에게 술을 취하게 해서 그들의 술주정을 보게 함으로써 술을 절제해야 하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교육시켰다고 들었다. 멀쩡한 노예들이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가 되어 주정을 하는 모습들이 천차만별로 분명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는 사람, 자꾸 싸우려고 하는 사람, 아무데서나 배뇨를 하거나 장소불문 잠을 자는 사람. 상전도 몰라보는 노예 등 그들의 행동을 보고 피교육자들은 자신들의 술에 대한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많은 자제력이 필요하겠지만...

자신이 술취한 상태에서 한 짓(?)을 술이 깨고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다. 나의 가장 황당한 처세술은 술을 깨고나면 필름이 끊기는 사람의 경우 술이 취한 상태에 있는 이 사람의 인격을 어떻게 대우를 해주어야 옳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나의 이 고민에 앞서 정작 그러한 상습적인 행위가 있다고 말되어지는 자기는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되어버린 자신의 기억으로부터도 어떠한 인격으로 존중되어 질 것을 기대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필름이 자주 끊기면 자신의 사회적 인격이 우선 신뢰를 잃는다. 자신의 사회적 인격이 신뢰를 받기 위해 우리는 술이 취하지 않는 상태에 얼마나 많은 시간 공을 들여왔는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기분좋자고 마시는 술, 인간관계를 더 공고히 하자고 마시는 술 그리고 자신의 진솔한 바닥(?)을 보여주고 이해받고 싶어 마시는 술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를, 관계를 만들어가기보다 그나마 만들어진 관계를 훼손하거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기분까지 망치고야 마는 술버릇을 용기를 착각한 오기 내지는 객기로 초지일관 지킬 것인지 말 것인지 자기이기로 답찾아 보기를 바란다.

나는 술을 반대하지 않는다. 내게는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가 아름다워보이기 때문이다. 술을 한 잔 하자는 말은 관계단절이 아니라 관계소통을 하고자 하는 하나의 제안의로 받아들여진다. 술을 함께 마시자는 것은 서로 마음을 나누자는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형님같은 당돌한 여자인 나는 술 한 잔 사 달라는 말을 기꺼이 수락을 할 수 있고 또한 술 사 달라는 요청을 주저없이 하기도 한다. 서로 마음을, 생각을 알고 나누고 싶지 추태를 나누자는 말이 물론 아니다. 술을 마시면서도 <민주적>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나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대의 술버릇은 어떠한가? 나와 술 한잔 할 사람은 자신의 술버릇부터 우선 고백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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