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민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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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6-03-07 02: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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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님, 저 00중학교 배정되었어요.>
<그래? 잘 된거니?>
<제 1지망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됐다고 생각해요. 학교가 가까워서 걸어갈 수도 있어요.>
<넌 운이 좋은 편이구나. 축하한다.>


아이는 약간 들떠있습니다. 자신이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같은 그래서 어서 자라고 싶은 야심찬 아이입니다. 공부도 꽤 잘하는 것 같고 키도 커서 별로 꿇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집안 형편이 좀 넉넉지 못한 것만 빼고는 말이죠.

<중학교에 들어가면 우선 교복이 필요하겠구나. 내가 교복을 해주마. 어때?>
<정말요? 정말요? >


녀석은 당황해하며 엄마를 부릅니다. 물론 기분좋은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아마 중학교가면 교복도 필요할텐데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지도 모르죠.

<엄마 고모가 교복을 해주신대요, 전화받아 보세요!>
<형님...>
<내가 교복을 해주고 싶은데 괜찮겠니?>


올케는 아무 말도 못하고 흑 하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너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중학교 교복을 해주고 싶을 지도 모르는데 그 기회를 내가 가져도 괜찮다면 내가 해주고 싶다.>


여전히 올케는 말이 없이 흐느낍니다. 설움과 고마움이 북받치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건 내 조카에 대한 투자이기도 해. 언젠가 내가 늙으면 그래도 고모라고 찾아오지 않겠니? 그 때 늙은 고모 용돈을 주던지 아니면 음료수라도 사가지고 올지도 모르는데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내가 그 아이를 맞이할 때 얼마나 부끄럽겠어? 네가 꼭 하지 않아도 된다면 내가 그 기회를 갖고 싶다. 내가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형님, 고맙습니다.>


간신히 잘 들을 수 없는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고맙다, 양보를 해주어서. 그리고 교복을 하러갈 때 전화를 해주면 나도 직접가서 함께 보겠다.>


이렇게 약속한 2주 전의 조카교복을 오늘 마련해주고 돌아와서 글을 씁니다.

내 고모님...

그 당시 고모님은 청렴결백한 공무원인 우리 아버지의 박봉생활과 매우 비교가 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때였습니다. 내 고등학교 수석입학을 발표받고 흥분에 들떠 공중전화로 고모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 때 나는 왜 고모님께 전화를 했는지 그 의도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오늘의 내 조카처럼 고모님께 그 무엇을 기대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은근히 나하고 동갑인 사촌의 기를 죽이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사실 불행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남의 불행을 얘기듣는 사람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일면 상대적 안도감도 있습니다만 남의 성공담을 들으면 자신의 상대적 비참함이 에고가 아픕니다. 자기 주변을 한 번 돌아보세요. 진정 자신의 성공을 자신만큼 기뻐해줄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그러한 상대는 바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이후 내가 고모님을 내가 뵌 것은 내 아버지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오일장 마지막 날 입국을 한 나는 밤새 아버지의 빈소를 지켰습니다. 지금은 힘겹게 사시는 고모님께서 많은 몸보시를 많이 하셨다는 얘기를 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감사를 하고 싶었어요. 고모님이 뒤척이십니다. 고인을 위해 매시간 경을 읽었더니 그 소리에 잠을 잠을 깨신듯 합니다. 좀 많다 싶게 용돈을 드렸습니다. 고모님 매우 염치없다며 받지 않으려 하십니다. 다른 사람 깬다며 쉬쉬하며 드린 용돈이었습니다.

이후 내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고모님의 말씀인 즉, 공부할 때 연필 한자루 공책 한권 사주지 못했다고 한 말 또하며 부끄러워 하더랍니다.

오늘 기분이 참 좋습니다. 3년간 입을 것이라며 헐렁한 옷을 골라놓은 올케에게 좀 멋있게 입도록 몸에 맞게 작은 치수로 내려주라고 한 것과 셔츠를 두 개 해주며 하나는 꼭맞게 다른 하나는 좀 넉넉하게 구입한 것도 녀석을 기분좋게 한 지도 모릅니다. 연신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며 녀석은 말합니다.

<고모, 빨리 고 1이 되고 싶어요.>
<너는 졸업이 좋으니 아니면 입학이 좋으니?>
<졸업을 해야 입학을 할 수 있죠. 창원계신 큰고모님은 졸업식날 오셔서 장학금을 주셨어요.>
<음, 그러니까 넌 공부를 잘 할 자신이 있다는 말이구나. 장학금을 미리 받았으니... 넌 운이 좋아! 좋았어!>


엄마가 해주는 교복보다 고모가 해주는 교복이 좋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엄마가 해줄텐데 자신은 고모님이 해주시는 것이니 더 특별하다고 생각한답니다. 물론 교복비가 매우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비싼 만큼 내 마음이 더 값지게 아이에게 기억될 지도 모르죠.

<고모님, 고맙습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올케가 대접하는 점심을 먹은 후 두 모자를 집 근처에 내려다 주고 손을 흔들며 은근한 희망을 날립니다. 아이의 청운의 꿈이, 대망이, 그리고 건강한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대단한 에너지를 잉태한 씨앗이 그 교복을 입은 아이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내 교복을 입던 그 시절이 스치면서 잠시 눈가가 젖습니다. 참 겁없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겁없이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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