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 언론, 믿을 수 있겠나
- 언론마저 정치적 편가르기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편가르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편가르기는 어떤 사안에 대해 그것이 내편에 유리하냐 상대편에 유리하냐에 따라 어느 한쪽을 선택함으로써 이성적 사고,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이런 점에서 편가르기에 따른 합리적 판단의 마비는 망국적인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편가르기는 정치권에서 비롯되었다.
정치권의 지역주의와 줄서기에 따른 편가르기는 전 국민을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넣으면서 합리적인 토론과 합리적인 선택이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망국적인 편가르기를 지식인 집단인 언론도 이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언론의 본분까지 망각해가면서 편가르기를 고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문제가 최대의 사회현안이 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노무현정권이 민족자주성의 회복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전작권을 회수하려 하는 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노무현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노무현정권의 자주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이른바 반노세력은 노무현정권의 안보외면과 반미성향을 규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칭송과 규탄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측에 대해 전작권의 반환을 요구해서 전작권 환수(일부에서는 ‘단독행사’가 맞는다고 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노대통령이 전작권의 반환을 요구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정부를 압박해서 환수하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장기표 시사논평 정론탁설-8월 30일 ‘미국은 왜 작통권을 한국에 이양하려 할까?’ 참조), 지난 9월 19일 중앙일보는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인 정대철 씨의 발언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다.
중앙일보는 ‘미국이 넘기길 원했던 전작권, 노대통령 싸워 찾은 듯 강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대철 씨는 “전작권(이양)은 우리가 갖고 온 게 아니라 미국이 원하고 바라던 것이었다. 해외주둔 미군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대전에선 지상군이 아니라 공‧해군을 가지고 싸운다는 전략이다. 그러니 지상군에 대한 전작권은 당사국에 넘겨주고 공‧해군에 대한 지휘, 작전권만 쥐고 있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대선직후 12월 21일께 러포트 사령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시대통령이 24시간 이내에 노대통령(당선자)이나 나를 만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타워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당시 러포트 사령관은 ‘앞으로 주한 미군이 달라진다. 지상군을 붙박이로 박아놓지 않고 해외 주둔 미국 재배치계획에 따라 유연하게 배치할 것’이라며 미군의 전략변화를 상세히 설명했다. 러포트 얘기가 ‘미군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육군으로 막지 않고 공‧해군력으로 단기전에 승부를 낼 것’이라고 했다. 전작권(이양)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미국 내부에서) 저절로 나오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김항경 외교통상부 차관을 러포트에게 소개하고 실무적 차원에서 일을 마무리하게 했다. 러포트는 나에게 한 얘기를 김 차관에게 설명했고, 이를 토대로 김 차관이 보고서를 만들어 노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안다. 최근 김 차관을 만났는데, 당시 일을 기억하고 있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전작권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측에 요구한 것이 아니고 미국측이 노 대통령에게 환수할 것을 요구했다면, 현재 전작권을 둘러싼 한국안의 칭송과 규탄은 허구에 기초한 것이 아닐 수 없고, 따라서 그 태도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즉 노 대통령의 자주성을 칭송하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인데 대해 규탄하든가 아니면 최소한 자주성에 대한 칭송은 거두어 들여야 할 것이며, 또 노대통령의 안보외면과 반미성향을 규탄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전작권 이양을 거부하지 못한 노무현 정권의 외교적 무능을 규탄할 수는 있을지언정 노 대통령이 반미자주 의식에 기초해서 미국의 의사에 반해 전작권을 환수하려 하는 것인 양 규탄하는 것은 중단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숨긴 노무현 정권을 강력히 규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중앙일간지에 이 같은 태도변화를 불러일으켜야 마땅할 기사가 아주 신빙성 있는 사실에 기초해서 보도됐는데도 양쪽 다 이 기사에서 보도된 사실을 모르는 척 하고 있다. 특히 ‘비판언론’(반정부언론)은 물론 ‘친여매체’(친정부언론) 어느 한 곳도 이 중대한 사실을 인용보도한 곳이 없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 어느 한 곳에도 정대철 씨의 이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다. 다른 언론사의 특종이라서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주장해 왔던 바(한쪽은 노무현 대통령의 안보외면 규탄, 다른 한쪽은 노무현 대통령의 자주성 칭송)에 배치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대의 현안으로 국민을 엄청난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는 국가대사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이에 대한 보도를 외면하는 이 언론들의 주장을 믿어도 될 것인가? 이 언론들이 중앙일보의 이 기사를 읽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대철 씨의 발언이 사실이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방향에서 취재를 해서 보도를 해야 할 것이고, 만약 정대철 씨의 발언 곧 전작권은 노대통령이 원해서 환수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이 한국정부에 요구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보도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르는 척하고 넘기거나 해괴한 논리로 자신들이 지금까지 견지해 왔던 태도에서 보도할 것이다.
국가적 대사에 대해 그 실상도 모르고 국민이 편을 갈라 싸고 있는 터에 언론이 이를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잡아 주겠는가? 그리고 이런 어리석은 일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고 업신여기겠는가? 얼마 전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문제가 정치이슈화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한국내의 찬반 양 진영이 이 문제의 실체도 잘 모르면서 정쟁의 도구로 삼아 싸우고 있는 것이 미국의 전작권 이양방침에 차질을 빚지 않기를 바란 데서 한 말일 것이다.
정치에서의 편가르기가 전 국민을 대립과 갈등으로 몰아넣으면서 이성적 사고, 합리적 판단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정상화와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터에 권력의 제4부로 지칭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언론이 망국적 편가르기에 매몰되어 사실보도조차 외면하고 있으니 언론의 대오각성이 없는 한 나라의 장래도 암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