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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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의 감성지대> 가족사랑
뉴스연대 취재기자
200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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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유행을 넘어 수출산업으로
뉴스연대 취재기자
200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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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호들갑?
뉴스와이어 취재기자
200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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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보면 만지고 싶다
민주통신
200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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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아이는 약간 들떠있습니다. 자신이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같은 그래서 어서 자라고 싶은 야심찬 아이입니다. 공부도 꽤 잘하는 것 같고 키도 커서 별로 꿇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집안 형편이 좀 넉넉지 못한 것만 빼고는 말이죠.
녀석은 당황해하며 엄마를 부릅니다. 물론 기분좋은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아마 중학교가면 교복도 필요할텐데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지도 모르죠.
올케는 아무 말도 못하고 흑 하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여전히 올케는 말이 없이 흐느낍니다. 설움과 고마움이 북받치는지 모를 일입니다
간신히 잘 들을 수 없는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렇게 약속한 2주 전의 조카교복을 오늘 마련해주고 돌아와서 글을 씁니다.
내 고모님...
그 당시 고모님은 청렴결백한 공무원인 우리 아버지의 박봉생활과 매우 비교가 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때였습니다. 내 고등학교 수석입학을 발표받고 흥분에 들떠 공중전화로 고모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 때 나는 왜 고모님께 전화를 했는지 그 의도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오늘의 내 조카처럼 고모님께 그 무엇을 기대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은근히 나하고 동갑인 사촌의 기를 죽이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사실 불행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남의 불행을 얘기듣는 사람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일면 상대적 안도감도 있습니다만 남의 성공담을 들으면 자신의 상대적 비참함이 에고가 아픕니다. 자기 주변을 한 번 돌아보세요. 진정 자신의 성공을 자신만큼 기뻐해줄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그러한 상대는 바로 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이후 내가 고모님을 내가 뵌 것은 내 아버지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오일장 마지막 날 입국을 한 나는 밤새 아버지의 빈소를 지켰습니다. 지금은 힘겹게 사시는 고모님께서 많은 몸보시를 많이 하셨다는 얘기를 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감사를 하고 싶었어요. 고모님이 뒤척이십니다. 고인을 위해 매시간 경을 읽었더니 그 소리에 잠을 잠을 깨신듯 합니다. 좀 많다 싶게 용돈을 드렸습니다. 고모님 매우 염치없다며 받지 않으려 하십니다. 다른 사람 깬다며 쉬쉬하며 드린 용돈이었습니다.
이후 내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고모님의 말씀인 즉, 공부할 때 연필 한자루 공책 한권 사주지 못했다고 한 말 또하며 부끄러워 하더랍니다.
오늘 기분이 참 좋습니다. 3년간 입을 것이라며 헐렁한 옷을 골라놓은 올케에게 좀 멋있게 입도록 몸에 맞게 작은 치수로 내려주라고 한 것과 셔츠를 두 개 해주며 하나는 꼭맞게 다른 하나는 좀 넉넉하게 구입한 것도 녀석을 기분좋게 한 지도 모릅니다. 연신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며 녀석은 말합니다.
엄마가 해주는 교복보다 고모가 해주는 교복이 좋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엄마가 해줄텐데 자신은 고모님이 해주시는 것이니 더 특별하다고 생각한답니다. 물론 교복비가 매우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비싼 만큼 내 마음이 더 값지게 아이에게 기억될 지도 모르죠.
올케가 대접하는 점심을 먹은 후 두 모자를 집 근처에 내려다 주고 손을 흔들며 은근한 희망을 날립니다. 아이의 청운의 꿈이, 대망이, 그리고 건강한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대단한 에너지를 잉태한 씨앗이 그 교복을 입은 아이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내 교복을 입던 그 시절이 스치면서 잠시 눈가가 젖습니다. 참 겁없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겁없이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지 않냐고...
민주통신
200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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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醜態)
추태(醜態), 추저분하고 창피스러운 태도나 짓거리라고 정의되어 있다. 추저분하다는 말은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말이다. 똥이 추저분한가? 그것이 있을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렇다. 모든 것, 모든 일은 상황에 맞는 각자의 자리가 있는 법이다. 불어에도 같은 뜻의 속담이 있다.(Chaque chose a sa place.)
나는 추태라는 말을 할 때 우선 술주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술 주(酒)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정에 물이 든 목이 긴 닭처럼 생긴 술독같다. 술꾼이 술을 마시고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를 지나 더 많은 술을 마시면 아예 술독이 된 술꾼은 소변을 보게 된다. 소변으로 물을 다 내보냈으니 그 빈공간에 귀신이 차고 든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더러울 추(醜)이다. 이는 순전히 김경숙식 억지해석이다. 또 다른 재미있는 해석을 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몇 수를 접고서라도 배우겠다.
나는 프랑스인들의 술버릇을 상당기간 지켜본 사람이다. 그들의 술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술을 취할 정도로 마셔 술분위기를 깨뜨린 추태를 부린 이들에 대해 거의 사회 매장급 무관심을 표출한다. 술을 이기지 못해 술주정을 부리는 이들에 대해서 상종을 거부하기 때문에 한 번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린 인간은 그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에 신뢰를 잃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것을 잃는 것이 아닌가?
프랑스에서 내가 교류한 친구들과의 파티에서는 나는 그들의 술주정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사실 내가 본 알코올 중독자들은 파리 거지 부부가 고작이었다. 길거리에 자면서도 도수가 높은 싼 알코올을 마시다 순찰중인 경찰에 의해 술병이 빼앗긴 것을 억울해하며 경찰관에 대들었지만 화가 난 경찰에 의해 술이 땅에 다 부어진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를 외쳐대고 있었다. 요즘 프랑스 청소년들은 부모 세대들의 음주에 반발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술을 거부하고 고기먹는 것을 거부하는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편, 영국인들의 술주정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 관대하다고 들었다. 술을 먹고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 실수를 인정해준다는 말이다. 한국은 술에 대해 매우 관대한 것 같다. 술 먹은 개라니 하면서 술에 취했으니 개짓을 하더라도 그것이 술이 깬 인간의 인격과 연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번 한 국회의원의 술주정으로 인해 그의 정치적인 생명에 치명적인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던가! 파티장의 풍경은 영국 사람들은 무수히 말을 하고 프랑스 인들은 춤을 춘다.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싸운다!!
나는 다툼을 별로 꺼리지는 않는다. 다툼은 진화를 인한 과정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역을 앓으면 열이나고 발진이 생길 때는 고통스러우나 병을 앓고나면 다시는 같은 병에 걸리지 않는 면역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화해를 하지 못하는 다툼이고 사과를 하지 못하는 자기 아집 내지는 자기합리화이다.
전체를 이렇다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그것도 십인십색의 다양성이 난무하는 인간사에 나는 분명 내가 경험한 사회의 일면들이라 전체적이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전개하는 이유는 이 또한 전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자신의 술에 대한 내성과 그리고 그 태도가 짐짓 자신의 사회적 인격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통찰해볼 자기 이해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어서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회문화적 압력을 갖고 있는 사회일수록 아마도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회, 술취할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될 필요이상의 스트레스가 축적된 것이 그 이유가 되지 않을까도 싶다.
이전 그리스 상류사회에서는 귀족 자제들을 교육하는 한 방편으로 노예들에게 술을 취하게 해서 그들의 술주정을 보게 함으로써 술을 절제해야 하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교육시켰다고 들었다. 멀쩡한 노예들이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가 되어 주정을 하는 모습들이 천차만별로 분명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는 사람, 자꾸 싸우려고 하는 사람, 아무데서나 배뇨를 하거나 장소불문 잠을 자는 사람. 상전도 몰라보는 노예 등 그들의 행동을 보고 피교육자들은 자신들의 술에 대한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많은 자제력이 필요하겠지만...
자신이 술취한 상태에서 한 짓(?)을 술이 깨고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다. 나의 가장 황당한 처세술은 술을 깨고나면 필름이 끊기는 사람의 경우 술이 취한 상태에 있는 이 사람의 인격을 어떻게 대우를 해주어야 옳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나의 이 고민에 앞서 정작 그러한 상습적인 행위가 있다고 말되어지는 자기는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되어버린 자신의 기억으로부터도 어떠한 인격으로 존중되어 질 것을 기대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필름이 자주 끊기면 자신의 사회적 인격이 우선 신뢰를 잃는다. 자신의 사회적 인격이 신뢰를 받기 위해 우리는 술이 취하지 않는 상태에 얼마나 많은 시간 공을 들여왔는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기분좋자고 마시는 술, 인간관계를 더 공고히 하자고 마시는 술 그리고 자신의 진솔한 바닥(?)을 보여주고 이해받고 싶어 마시는 술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를, 관계를 만들어가기보다 그나마 만들어진 관계를 훼손하거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기분까지 망치고야 마는 술버릇을 용기를 착각한 오기 내지는 객기로 초지일관 지킬 것인지 말 것인지 자기이기로 답찾아 보기를 바란다.
나는 술을 반대하지 않는다. 내게는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가 아름다워보이기 때문이다. 술을 한 잔 하자는 말은 관계단절이 아니라 관계소통을 하고자 하는 하나의 제안의로 받아들여진다. 술을 함께 마시자는 것은 서로 마음을 나누자는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형님같은 당돌한 여자인 나는 술 한 잔 사 달라는 말을 기꺼이 수락을 할 수 있고 또한 술 사 달라는 요청을 주저없이 하기도 한다. 서로 마음을, 생각을 알고 나누고 싶지 추태를 나누자는 말이 물론 아니다. 술을 마시면서도 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나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대의 술버릇은 어떠한가? 나와 술 한잔 할 사람은 자신의 술버릇부터 우선 고백하기 바란다. ^^
민주통신
200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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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에게
민주통신
200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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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희의원 성폭력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허위는 무엇인가?"
2006년 2월 24일 밤 서울의 한 고급 음식점에 한나라당 박근혜대표, 최연희 사무총장, 이계진 대변인 등 7명과 동아일보 한나라당 출입기자 등 7명이 7:7로 미팅을 하듯이 만났다. 이것이 움직일 수 없는 팩트이다. 이 만남이 무슨 목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만나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수 백 만원 거액의 밥값과 술값을 누가 지불했는가가 궁금할 따름이다.
보도에 의하면 밤 10시 10분경 박 대표와 편집국장이 자리를 뜨고 2차 술자리에서 ‘최연희의원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노래방기기 마이크를 끄고 소리치며 뛰쳐나가는 상황까지 이것이 진실이고 팩트이다. 매우 엄중한 ‘성폭력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이규택 최고위원이 사과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박근혜대표가 피해 여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백배 사과를 했다. 여기까지가 보도에 의해 알려진 사실이다. 사과만하고 전화를 끊었을까?????
그 다음은 추론이다. 아마 25일 날 한나라당은 상당히 심각하게 대책회의를 했을 것이다. 동아일보도 이 같은 엄청난 사태에 나름대로 대책회의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26일 어찌된 영문인지 최연희 사무총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버젓이 민주노동당 전당대회에 영광스럽게 한나라당 대표 축하사절로 파견이 된다. 이것은 팩트이다.
그리고 은폐의혹이 남는다. 한나라당이나 동아일보나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이 사태를 어찌할 것인가? 양 진영이 ‘최연희의원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어떠한 시도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남는 것이다. ‘은폐에 대한 모종의 합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같은 엄중하고도 당혹스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성폭력 범' 최연희 사무총장에게 공당의 전당대회 축하사절로 파견할 엄두를 냈을까? 하는 점이다.
나는 이러한 일반 국민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한나라당의 행동에 다시 한번 ‘은폐의혹’을 따져 묻는다. 최연희의원은 분명하게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은폐의혹’에 대해 낱낱이 밝힐 것을 촉구한다. 이계진 대변인이 그래도 가장 말짱한 상태였으니 사건의 전말에 대해 밝히라는 것이다.
나는 기자회견을 통해 ‘은폐의혹’을 제기했다. 회견장을 나와서 마침 회견장 앞에 있었던 이계진 대변인에게 직접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사람이 말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손짓 발짓을 하게 된다. 같은 장소에 있었으면서 당시 상황을 ‘못 보았다.’는 이계진 대변인의 말에 ‘소리치며 뒤쳐 나가는 그 같은 심각한 상황을 어찌 못 볼 수 있느냐?’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것이 소위 ‘성추행 재연’으로 부풀려 진 상황설명이다.
나는 이계진의원을 뒤에서 껴안지 않았다. 끌어안지 않았다. 이계진 대변인은 벽에 등을 대고 있는 상황이라 물리적으로도 불가능 했다. 나는 옆에 서서 이야기 했고 이것을 입증할 기자들의 증언도 확보해 놓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이지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정청래의원이 이계진 대변인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성추행 장면을 재연했다.’고 거품을 물었다. TV 카메라 앞에서 용감하게 ‘제 2의 성추행’이며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나로서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확실한 사법적 동영상 물증을 아주 손쉽게 확보했다. 한나라당 진수희의원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앞장섰다. 정동영의장의 ‘실업고 폄하’발언 허위사실 유포까지 묶어 법정에서 엄중한 죄 값을 치룰 것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최연희 사무총장이고 허위 사실을 전국적으로 유포한 이정현 부대변인 본인임을 분명히 한다.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진수희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현장에 있지도 않은 그들이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도 부인하는 장면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의 시력을 의심한다.
나는 결단코 이계진 대변인을 뒤에서 껴안거나 끌어안지 않았다. 그런데 한나라당 부대변인의 말만 믿고 신문과 방송은 ‘성추행 재연’으로 확정적 고정적 프레임을 갖추어 일제히 보도했다. 나에게 확인 취재를 한 언론은 단 한 곳도 없다. 이것이 우리 언론의 ‘취재 현장’의 현주소인지 대략 난감하다.
이같은 허위사실이 전제되었기에 '재연'이란 어처구니없는 프레임이 설정되었다. 이러한 허위설정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어느 인터넷에서는 허위사실을 근거로 나를 찌질이로 표현했다. 어느 신문은 나를 헛발질 선수로 표현했다. 허위사실에 입각한 보도가 나가고 나는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비난에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심각한 명예훼손과 업무마비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바로잡겠다.
뒤늦게 사건의 진실을 파악한 4시간 후에 황급히 ‘뒤에서 끌어안았다.’는 그 기사를 내리고 나의 의견을 담은 ‘반론보도’를 한 방송사도 있다. 나의 반박 기자회견을 담아 전날의 오보를 상쇄시키려는 보도도 있었다. 나는 분명히 같은 방송시간대 같은 지면에서 같은 비중으로 ‘정정보도’를 해 줄 것을 ‘공식요청’했다. 그러나 이것은 묵살되었다. 허위사실은 대문짝만하게 간판뉴스에 방송은 방송대로 종이신문은 신문대로 취급되고 진실은 쥐꼬리 털끝만큼 보도되는 이 사실을 바로 잡을 것이다.
우선 이계진대변인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거나, 껴안았다고 직접 보도한 명백한 허위기사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책임을 1차적으로 물을 것이다. 그다음 오보를 한 기사는 경중을 따져 가능한 선에서 책임을 따질 것이다. 당사자에게 단 한번도 확인취재를 하지 않고 소설을 쓰는 취재관행을 뿌리 뽑는데 법적 제도적 장치마련에도 힘을 쓰겠다. 더 이상 국민들이 언론의 무책임한 오보로 죽어가는 일이 없도록 신명을 다 바치겠다.
나는 총선에서 ‘언론개혁’을 공약했다. 그리고 언론개혁법을 만들었다. ‘만두 속 파동’을 기억하는가? 건실한 ‘만두사장’은 언론의 파상공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심정을 이제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만두 속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언론은 짤막하게 보도했다. 언론의 횡포가 얼마나 많은 무고한 국민들을 괴롭혀왔을까? 신문법과 방송법이 왜 제대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현장체험을 했다. 그리고 언론피해구제법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법인지도 절감했다.
진실은 진실이고 허위는 허위이다. 최연희 사무총장은 ‘성폭력’을 휘둘렀고 이틀 후 한나라당 대표로 민주노동당 축하사절로 파견되었다. 나는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고 한나라당은 ‘뒤에서 끌어안지도 껴안지도 않은’ 사실을 왜곡해 유포했고 이를 언론이 받아쓰기하듯이 보도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정현부대변인, 진수희의원은 ‘허위사실에 대한 명예훼손죄’와 ‘인신모독죄’로 법정에서 죄 값을 묻겠다.
그리고 한나라당 허위사실 유포만 받아 적고 이를 나에게 한 번도 확인 취재를 하지 않고 무차별적이고도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보도한 언론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이에 대해서는 당의 이미지와 나의 명예를 위해 불가피하게 언론개혁 차원에서 법률적 검토를 마치는 대로 사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다. 아마 녹녹치 않을 것이다. 팩트 왜곡에 대한 악의적 보도 행태는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2006년 3월 5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정청래 올림
뉴스와이어 취재기자
200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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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이해찬 총리의 사죄, 진정성이 담겨 있는가? "
이해찬 총리가 국민들에게 부적절한 형식으로 사죄를 했다. 그러나 자신의 거취에 대한 정확한 입장표명도 부적절한 골프 행각에 대한 해명도 일절 하지 않아 과연 공보수석을 통한 사죄가 진정성이 담긴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총리의 이런 행태는 오만과 독선이 가득 찬 행간을 다시 한번 보여주어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에 숨어 자리를 보전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총리의 골프행각에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도저히 함께 하면 되지 않는 인사들이 함께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던 기업인, 주가조작으로 구속되고 담합혐의로 공정거래위의 조사를 받은 기업인 등 한마디로 ‘비리 기업인’들과 골프 사교를 즐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 총리는 대국민 사죄에 앞서 왜 비리 기업인들과 보라는 듯이 골프를 쳤고, 이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해명을 해야 마땅하다. 누가 부적절한 골프를 주선했고, 누가 비용을 부담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 총리의 부도덕한 골프 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6월에는 군부대 오발사고 희생자 조문 전에 골프를 쳤다. 2005년 식목일에는 속초양양 산불로 낙산사가 불타고 있는 와중에 태연히 골프를 쳤다. 2005년 7월에는 남부지방에 엄청난 수해가 발생했음에도 제주도에서 일부 장관들과 함께 골프를 쳤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 최대의 비리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는 희대의 브로커 윤상림씨와도 수차례 골프를 즐겼다. 작년 12월에는 대통령만 사용하는 봉황문양의 골프공 세트를 주위에 돌리다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행정부의 수반이 철도파업 첫날 비리기업인과 골프를 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해찬 총리는 공보수석의 입을 빌릴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 이번 골프 행각이 비리 기업인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한 ‘사면성 골프’였는지, 부산경남 지역 지방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선거용 골프’였는지 등 모든 의혹에 대해 직접 밝혀야 한다.
국민적 공분이 더 커지기 전 본인의 입으로 명확하게 사의를 표명해야 한다.
이해찬 총리의 이번 골프 행각은 3.1정신을 골프채로 날려버리고, 철도파업으로 인한 시민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다. 국민의 가슴을 때리는 골프채를 휘두른 것이다.
국민과 국정보다 골프만을 사랑하는 이 총리는 즉각 총리를 사퇴하고 차라리 프로골퍼로 전향할 것을 권유한다. 그것만이 나라와 본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뉴스와이어 취재기자
200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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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변호사님, 열린우리당 후보는 당신에게 맞지 않습니다"
강금실 전 장관님, 안녕하신지요.
저는 민주노동당 서울시장선거 당내경선에 출마한 김종철입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과 1기 최고위원, 그리고 중앙연수원장을 지낸바 있습니다. ‘전 장관’이라고 호칭을 쓰려니 조금 버거워서 그냥 현재 맡고 계신 직을 인용하여 ‘강 변호사님’이라고 이 서신에서는 부르겠습니다.
강 변호사님, 저와는 직접 만난 적도 없고 인사도 나눈 적이 없는 분께 오늘 좀 무례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강 변호사님이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굳혀가는 것으로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 변호사님. 열린우리당은 적어도 ‘현재의’ 강 변호사님과 어울리지 않는 당입니다. 만약에 출마하신다면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후보와는 경쟁자가 되는 것인데, 잠재적 경쟁자로서 이런 편지를 드리는 것이 도의에 맞지 않을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경쟁자로서 확정이 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피하고 싶기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가장 큰 이유는 강 변호사님이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후보가 되는 순간 지금 본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강 변호사께서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 최고의 실현치는 노무현 정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고, 정동영 의장의 대리인 수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빈곤과 사회양극화 문제, 비정규직문제, 교육,의료,주거불평등 문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강변호사께서 후보가 되고자 하는 열린우리당이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당장 며칠전 비정규직법 개악안이 열린우리당의 주도로 통과되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얘기하면서도, 아무런 사유제한도 없이 계약직 노동자를 2년까지 쓸 수 있고, 가장 비인간적이라는 파견제 노동의 문제도 전혀 개선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2년마다 대량 해고의 물결이 넘실댈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 '노동자의 단결권'에 있다는 것은 노동운동가들을 변호해보신 강변호사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항상적인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며 단결할 수조차 없는 노동자를 대량으로 양산하겠다는 결국 노동자들의 고통을 현행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죠. 이런 정권의 구원투수로서 강 변호사께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할 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쩌면 노무현 정권-열린우리당의 실정을 부드러운 미소로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에 그칠 것입니다.
주택문제는 또 어떻습니까. 서울의 주택보급율이 이미 86%이지만 주택소유율은 40%에 불과합니다. 집 한 채 마련하고자 하는 서민들의 열망을 이용하여 열린우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아파트원가공개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켰나요. 당장 탄핵사태가 끝나자마자 대통령도 나서서 반대하고, 당 지도부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총선 과반수 획득을 하고 나서 열린우리당은 서민의 입장이 아니라 건설사의 대변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오죽이나 이 문제가 심각하면 수구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이 아파트 반값을 얘기하고 나섰겠습니까.
강 변호사께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다면 집 없는 서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지난 총선 때의 열린우리당처럼 또 다른 거짓공약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과연 그런 공약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만약 아파트원가공개나 그 이상의 공약을 개인소신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들 열린우리당 소속 시장으로서 강 변호사님이 그걸 실현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서민들의 가장 큰 고통인 의료비 문제, 아이들 교육문제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민간의료자본이 9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시장원리에 충실한 민간의료자본은 대다수 노동자, 서민을 위한 의료를 펼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공공의료의 확대가 해답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이와는 반대로 의료영역에 시장원리를 도입하여 의료개방과 의료산업화를 추진한다고 합니다. 의료의 공공성을 부정하고 산업화를 촉진하겠다는 얘기이지요. 의료가 산업으로 존재하고, 번창하기 위해서는 수요가 있어야 합니다. 즉, 아픈 사람이 많아야 하고, 국민들이 계속 아파줘야 합니다.
민간의료자본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에서 치료하는 데 수백~수천만원이 드는 중증질환에 대한 치료는 발달돼있지만, 아프기 전에 막아주는 예방의학은 지극히 부실한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들의 건강을 공공영역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저 외화벌이의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대통령이 속해 있는 당의 서울시장 후보로서 강 변호사께서 공공의료 확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학 한해 등록금이 1천만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여타 비용을 포함하면 대학생 자녀 한명에게 들어가는 돈은 1년에 수천만원이 됩니다. 이들 서민들의 자녀를 위해 강변호사가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어떤 아이의 성적이 자신의 노력보다는 부모의 경제력으로 결정되는 이 시대에 열린우리당의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악화되는 교육불평등, 교육에 의한 빈부의 대물림 현상을 지켜보며 한마디 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도 한나라당보다는 낫잖아?”
강 변호사님, 노무현 대통령은 과반수 국회의석을 가지고도 서민들의 소망을 실현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로 가진 사람들 위주의 정책을 실시하여 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강 변호사께서는 서울시장으로 당선된다고 해도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입니다. 서울시의회의 과반수가 한나라당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에서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은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겠지요. 그래서 더욱 말리고 싶은 것입니다.
강 변호사님,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금의 강 변호사님을 보자면 예전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이 연상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80년대에 우리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가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됐을 때, 변호를 맡았다고 하지요. 그리고, 여러 학생운동가들의 변호도 맡았고요. 강 변호사께서 제3자 개입금지 혐의로 구속됐던 권영길 의원의 변호를 맡고, 지난해에는 조승수 전 의원의
억울한 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를 맡은 바 있어 민주노동당과는 인연이 남다릅니다.
저는 이러한 민주노동당과의 좋은 인연, 강 변호사께서 갖고 있는 좋은 이미지와 생각이 강 변호사님의 열린우리당 입당, 시장출마로 완전 어그러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강 변호사께서 지금의 열린우리당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사회양극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으나, 그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노동자, 농민, 서민의 눈물을 생각한다면 열린우리당의 대리인으로 나서지 않기를 진정 바라마지 않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그리고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은 무례한 편지가 됐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것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시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강 변호사께서도 언론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강 변호사님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보시기를 진지하게 부탁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새 봄에 건강하십시오.
2006년 3월 3일 화창한 봄날에
김종철 드림
뉴스와이어 취재기자
200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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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략의 핵심
민주통신
2006-03-05